입봉 하면 원룸 크기가 달라질까(1)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포기해야 했던 것들

by 애미라이터

지방에서 살다가

오직 방송작가를 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

나의 의지로 올라온 만큼

집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로 막 상경했을 무렵

친척이 살고 있는 집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친척은 주말에만 집에 오기 때문에

주중에는 내가

주말에는 친척이 머무는 스케줄이었다.


그 집은

홍제동 내리막길 중간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면

바로 길바닥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침마다 사람들의 출근길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바쁘게 걸어가는 또각또각 구둣소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내 귓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반지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햇빛 따윈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사람들의 바쁜 발소리를 알람 삼아

'아. 아침이구나' 하고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나의 첫 집이 좋았다


서울에서 작가로 살 수 있다는 게 좋았고

나만의 안식처가 있다는 게 그저 행복했다.


2009년 12월 31일.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하고 퇴근 중이었는데


늘 연말을 가족과 보내다가 혼자 자취방에서 보내려니 갑자기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때 골목길 모퉁이에서

붕어빵 장사를 막 끝내고 정리하려는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저 죄송하지만 붕어빵 3천 원어치만 주세요."


"가족이랑 먹으려고?

어차피 정리하고 나도 들어가려고 했거든.

남은 거 다 싸줄게요. 아가씨 땡잡았네~~"


아주머니는

장사하고 남은 붕어빵을 모두 싸주셨다.

대충 봐도 5천 어치는 훌쩍 넘는 양이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아주머니가 싸주신 붕어빵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붕어빵을 먹었다.


라디오에서는

2010년 새해를 축하하는 dj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동생들과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자꾸 울컥했지만

붕어빵을 먹으며 밀어 넣었다.


지금도 가끔

붕어빵을 먹을 때면

그때 홍제동 반지하에서 먹었던

눈물 젖은 붕어빵이 생각나 피식 웃곤 한다.


홍제동 반지하에서 지낸 지

3개월쯤 됐을까?


갑자기,

친척이 화를 내며 전화를 했다.

내가 주중에 너무 집을 더럽게 써서

친척오빠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였다.


나름 열심히 청소한다고 했지만

오빠 성에는 안 찼나? 하고 나는 가볍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나는 경악했다.


친척오빠가

화장실 변기와 바닥에 묻은 얼룩과 물자국,

걸레로 방바닥을 닦은 후 머리카락과 먼지가 잔뜩 뭉쳐있는 사진들과 함께


너 제대로 씻고 다니기는 한 거니?
여자가 그렇게 더러워서 어떻게 하니
내 조언을 잘 새겨들으면 너의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거야.

라는 내용을 적은

A4 2장짜리 보고서(?)를 남기고 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집에서 내가 환영받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나는 그 집을 나왔고

다른 집을 구할 때까지


고모가 운영하는 연희동 작은 가게에 딸린 가겟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가겟방은 2평 정도 됐는데

그곳에서 할머니와 나, 고모가 지냈다.


잘 때는 몸을 반으로 접어야 할 만큼 좁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가게 옆 건물 2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써야 했는데 매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자물쇠를

걸어 잠가야 했다.


한 번은 아침에 샤워를 하고 있는데

술에 취한 남자가 화장실 문을 미친 듯이

두들겨 대는 바람에 식겁한 적이 있었다.


빨래를 돌린 후

널 곳이 마땅치 않아 모두 화장실에 널어야 했는데

공용화장실을 가로지른 주황색 빨랫줄에 걸린

내 옷들을 볼 때마다


"서울은 최소한의 사생활조차 허락되지 않는 도시일까?"

싶었다.


무엇보다

가겟방은 무조건 10시 안에 귀가를 해야 했다.


가게 운영 시간인 10시가 넘으면

고모가 밖에서 방범 셔터를

내려 버리기 때문이었다.


셔터가 한번 내려가면

그다음 날 아침 가게가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가겟방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 당시 막내작가에게 야근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친척의 배려로

친척 오빠의 반지하와 가겟방에서 1년을 버텼고


막내 작가에서 서브 작가로 입봉 후

나는 신촌에서 진짜 내 집,

아니. 사생활이 보호되는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10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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