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봉 하면 원룸 크기가 달라질까(4)

빨래 돌리려고? 눈치 게임 시작!

by 애미라이터

서울의 오래된 골목을 걷다 보면

붉은색 혹은 갈색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주택을 자주 마주친다.


내가 머물던 대방역 3번 출구 동네 역시

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곳이었다.


집과 사람,

그리고 사람 아닌 것들까지

한 지붕 아래 엉켜 사는 곳.


그날도 출근 준비로 정신없는 아침이었다.


책상 위 손거울을 보며

한창 아이라인을 그리고 있는데

묘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들려온 아주 미세한 소리.


“다다다다다—”


제발 아니길 빌며

본능적으로 싱크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의 불길한 예감은

200% 적중했다.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마치 본인도 출근이라도 하듯

바쁘게 바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바퀴벌레에게도 분명한 ‘발자국 소리’가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녀석과의 살벌한 동거가 시작됐다.


늦은 밤 귀가해

불을 ‘탁’ 켜는 순간,


벽에 붙어 있던 녀석들이

‘샤샤삭’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느 날은 화장실 벽에서,

어느 날은 냄비 안에서,


또 어느 날은

겁도 없이 자고 있던

내 다리 위를 유유히 지나갔다.


주말 내내 집을 비웠다 돌아올 때면

지금의 남편을 방패 삼아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비장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들에게도 귀가 있을 거라 믿으며

목청껏 욕을 내뱉으며 입성하기도 했다.


아마 옆집 사람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본을 쓸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꼭 쉬는 날에만 맞춰 등장하는 녀석들.


그야말로

최악의 불청객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원룸. 오른쪽이 집 대문이다.

그 집에는

바퀴벌레 말고도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공용 세탁기.


여섯 세대가

세탁기 단 한 대를 함께 썼다.


세탁기는 지하 1층 마당 한가운데 있었고,

빨래를 하러 내려가면

이미 누군가의 세탁물이

돌아가고 있기 일쑤였다.


대부분 직장인이었기에

평일 저녁과 주말은

그야말로 세탁기 쟁탈전.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것이

고도의 심리전이자

눈치게임이라는 걸.


2층 방에서

대본을 쓰고 있으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지하 세탁기에 가 있었다.


‘띠 리링~’


세탁 종료 알림음이 울리는 순간,

나는 잽싸게 빨래 바구니를 들고

반지하 계단을 질주했다.

다 돌아간

남의 빨래를 조심스레 바구니에 옮겨두고

내 빨래를 밀어 넣는다.


잠시 후

빨래 주인은 슬그머니 나타나

자기 빨래를 가져갔다.


코인 세탁실도 흔치 않던 시절,

우리는

서로의 기척을 살피며 살았다.


바퀴벌레와 세탁기 눈치게임에

멘탈이 탈탈 털리면서도

나는 그 집에서 일 년을 버텼다.

나의 아지트였던 이야기 속 원룸. 나름 예쁘게 꾸며놓고 살았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있는데

지하 1층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창밖을 보니

경찰들이 엄마와 아들 둘이 살던 집 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엄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울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들이 너무 깊게 잠든 바람에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아 벌어진 소동이었다.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한동안 내려앉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도

남편에게 못 박듯 말한다.


“여보,

나는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딱 두 가지만은 절대 안 돼.


첫 번째,

바퀴벌레가 있는 집.

두 번째,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

알겠지?"


프로 지방러의 월세 생활은

그 붉은 벽돌집에 묻어두고 온 것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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