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없다고 컬러바 띄울래?

실시간으로 혈관이 쪼그라드는 밤을 지새워본 적 있나요?

by 애미라이터

방송 중 가장 재미있던 프로그램이 뭐였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코

생방송이다.


아침생방,

저녁생방.

방송작가라면 한 번쯤은 꼭 거쳐야 할 관문.


종합구성물이자 매거진 프로그램인 생방을

나는 아침과 저녁 모두 했다.


아침 생방은 S본부에서,

저녁 생방은 M, K본부에서.


특히 아침 생방은

일분일초, 촌각을 다투는 아이템 전쟁터였다.


아침 생방은

다섯 개 제작사가 돌아가며 방송을 준비한다.


당시 나는 화요일 팀이었다.


월요일 아침 7시 반에 출근하면

그때부터 모든 뉴스 창을 켜두고

실시간으로 새로고침을 누른다.


아이템이 될 만한 사건 사고를 찾기 위해서다.


나는 뉴시스 담당이었다.


거의 1분 단위로


새로고침,

새로고침,

새로고침.


살인, 폭행, 화재, 강도, 강간.


눈길이 확 가는 사건을 2~5분짜리 짧은 VCR로 말아

다음 날 아침 생방에 내보내는 코너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음 날 아침 7시,

생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약 23시간 안에

취재, 촬영, 편집, 자막까지 모든 걸 끝내야 했다.


메인언니와 팀장님의 컨펌을 받아

아이템이 잡히면 담당 작가는 2분 내로 전화 인터뷰를 하고,

피디와 리포터는 목동을 출발해

대한민국 어디든 달려간다.


사건 담당 형사, 피해자, 가해자, 현장까지

밀착 취재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편집을 하고 자막을 넣는다.


작가는 편집실에서 피디가 자르는 화면을 보며 실시간으로 더빙 원고를 쓴다.


한 번은 생방 한 시간 전,

편집 중인 피디 옆에 앉아

울다시피 하며 더빙 원고를 쓴 적도 있다.


2011년 11월,

생방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오후 3시가 넘도록 아이템이 잡히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 갔다.


미친 듯이 새로고침을 하던 중 눈에 들어온 기사 하나.


노래방...살해...강간


'됐다...!'


속으로 오케이를 외치며

메인 언니에게 컨펌을 받았고

관할 경찰서 형사와 통화를 했다.


형사는 현장이 정신없다며 일단 내려오라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울산.


목동에서 왕복 8시간.

취재까지 하면 밤 12시는 훌쩍 넘길 거리였다.


“괜찮겠어?”


이미 다른 작가들은 아이템을 잡고 피디를 현장에 보낸 상황이었고

아이템이 없는 건 나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다녀오세요.”


사건이 터지면 바로 출동했던 촬영팀 차량



짝꿍 피디는 출발했고

나는 드디어 아이템을 잡았다는 안도감에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있다가 김밥 한 줄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저녁 7시.

오전에 나갔던 피디들이 하나 둘 사무실로 돌아올 즈음

울산에 간 피디에게 전화가 왔다.


“하...씨. 담당 형사가 취재 절대 안 된대.

피해자, 가해자 인터뷰도 안 되고 자기 인터뷰도 안 한 대.

위에서 방송 나가지 말라고 지시 내려왔대.”


순간,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모니터 앞이 갑자기 뿌옇게 변했다.


촬영 간 피디가 현장에서 비빌 수 없으면

그건 끝이었다.


메인언니는 피디와 길고 긴 통화를 했고

결국 피디는 아무것도 담지 못한 빈 테이프를 들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생방까지 7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다시 아이템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각자 취재한 아이템을 편집하고 대본을 쓰느라 정신없는 사무실에서

나는 잠도 잘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야. 아이템 날아갔다고 생방 중에 니 코너만 컬러바 띄울 거야?
할 일 없으면 다른 작가들 좀 도와.”


메인언니의 말에 쭈뼛쭈뼛 다른 작가들을 도우려 했지만

각자의 역할이 명확한 곳에서 내 도움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네이트온에 접속해 있는 친구에게 쪽지를 보냈다.

나 아이템 날아갔다.

진짜 한심해 미치겠다.

이대로 꺼지고 싶다.


그렇게 나는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7시간 동안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밤을 새웠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내며

밤을 새우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두가 바쁜 가운데나 혼자 멈춰 서 있는 게

얼마나 잔인한 벌인 지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인생에서도.


아이템이 없다 한들,


컬러바를 띄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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