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로 본 세상' 탄생기
2011년 9월.
방송을 앞두고 기획 회의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제작사 대표님이 한 가지 아이템을 제안하셨다.
“요즘 사람들 차에 블랙박스 하나씩은 다 달려 있잖아요.
거기에 사고 장면만 찍히는 게 아니거든요.
별의별 영상이 다 찍힐 거예요.
그 영상들을 엮어서 코너를 만들면 어때요?”
‘교통사고 없는 대한민국을 꿈꾸며…’라는 기획 의도 아래,
그렇게 〈블랙박스로 본 세상〉 이라는 코너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코너를 맡은 첫 작가가 바로 나였다.
나는 네이버와 다음 카페를 돌아다니며 블랙박스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보배드림 같은 커뮤니티까지 뒤지며
올라온 영상들을 하나씩 모았다.
영상의 주인에게 메일과 쪽지를 보내
방송에 사용해도 괜찮겠냐고 허락을 구했고,
때로는 직접 찾아가 당시 상황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억울한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 웃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손바닥만 한 블랙박스 안에는
정말 사람 사는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코너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누구에게나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블랙박스는 그 욕망을 너무도 손쉽게 보여주는 장치였다.
다른 사람이 겪은 하루를 화면으로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몰입을 느꼈다.
생방송 전날까지도 영상 제보를 받았고,
내용이 부족하면 직접 인터넷을 뒤져 새로운 영상을 찾아냈다.
보배드림에 “이 영상의 주인을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면
몇백 명의 사람들이 앞다투어 연락처를 수배해주기도 했다.
구성은 보통 전후 사연이 확실하거나,
임팩트가 큰 영상 위주였다.
사연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거나,
거부할 경우에는 녹취로 대신하기도 했다.
당시 코너의 자문위원은 한문철 변호사님이었다.
운전에 대해선 젬병이었던 내가
교통법규를 공부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더빙 대본을 쓰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를 알게 해준 코너이기도 했다.
마치 스포츠 경기 생중계를 하듯
영화를 리뷰하듯 생생하게
써내려간 원고는
지금 봐도 스릴 넘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트렁크에서 빨간 야구방망이를 꺼내 휘두르던 남자의 장면이었다.
자신의 앞길을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그 남자의 위협적인 모습은 고스란히 블랙박스에 찍혔고
결국 그는 위협죄로 고소당했다.
제보자는
“아무리 화가 나도 도로 위에서는 말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제보하고 방송 출연까지 결심했다고 했다.
당시 원고 제목들은 지금 봐도 믿기지 않는다.
역주행, 5중 추돌, 멧돼지 가족, 도로 위를 달리던 말까지.
블랙박스 안에는 정말 별의별 인생이 다 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사고 영상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작은 블랙박스 안에 담긴 사람들의 하루와 희노애락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블랙박스로 본 세상〉에 열광했던 건
사실
그 안에서 나를 닮은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