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하면서 좋은 팀을 만나기란...
방송을 제작할 때마다 늘 느끼는 게 있다.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단언컨대,
방송은 협업이 전부다.
피디 혼자 기깔나게 촬영을 한다고 한들,
작가가 아무리 헉 소리 나는 구성을 짜고 대본을 쓴다 한들.
협업이 전혀 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방송은 나가겠지만 그 팀은 오래 가지 못할 뿐더러
방송 만드는 과정 자체가 지옥이 될 수도 있다.
보통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작가와 피디가 팀이 되어 한 코너를 맡는다.
작가가 찾은 아이템과 사례자가 조금 별로여도
피디가 찍어온 그림과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웬만하면 최대한 서로를 베려하고 존중하며 일을 한다.
물론 욕심 많은 피디와 작가들 중에는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좋은 방송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같으니
제작 기간에는 예민해도 방송을 털고 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아무일 없던 것 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가 왕왕있다.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방송 만드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고?
라고 느꼈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K본부에서 하던 저녁 생방송.
당시 내가 맡았던 코너는
반려견의 이야기를 예능다큐 식으로 풀어낸 ‘도그멘터리’였다.
코너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함께 코너를 만들었던 피디님과의 작업이 즐거웠다.
내가 촬영구성안을 쓰면 아이템이 돋보일 수 있도록
시바이, 아니 아이디어를 두 개 이상 더해서 촬영을 해왔고
편집도 꼭 나와 상의하면서 함께 진행했다.
사례자의 인터뷰 취재가 잘 안 풀린 채로 촬영을 가도
피디님은 항상 몇 배 이상의 촬영본을 들고 금의환향했다.
함께 아이템을 정하고
함께 구성을 짜고
함께 편집을 하는
그 과정이 그냥 좋았다.
생각해보면 당시 팀원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가끔 메인언니는
너네 피디랑 작가가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라.
작가는 콧대가 세야 하고 좀 강하게 나가야 피디들이 무시하지 않는다.
라며 조언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삼삼오오 모여 술도 마시고 놀러도 다녔다.
우리는 그렇게 끈끈했다.
그리고 그 끈끈함의 진짜 이유는 밥을 잘 사줘서도 술을 자주마셔서도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를 지켜줬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생방송 전날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피디님이 만든 코너 시사가 끝난 후, 팀장님이 조용히 우리를 불렀다.
“야… 이번에 니네 코너는 방송 못 나가겠다. 불방이야. 너네것만”
일주일 동안 섭외해서 촬영하고 밤새 편집을 했는데
재미도 없고 임팩트도 없고 감동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피디님과 나는 풀이 죽은 채
터덜터덜 회의실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피디님이 다시 회의실로 들어가더니
5분 정도 후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방송 못 나가도 작가 페이는 꼭 챙겨달라고 했어.
우리 다 고생했잖아.”
방송을 한 이례로 그런 배려는 처음이었고
그날 이후,
그 피디같은 동료, 후배, 선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도
나는 웬만하면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과 갈등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간혹
'왜 이렇게 피디한테 모든 걸 맞추냐,
피디가 상전이냐'
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방송일 자체가 극한직업이고 힘든 작업인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날을 세우는 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좋은 방송보다
좋은 '팀' 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