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다이아몬드 등급이 되지 않을래? -방송 아닌 썰
지금도 생각하면
진짜 미쳤지... 싶은 레전드 오브 흑역사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건 방송과는 상관없는 에피소드다.
때는 바야흐로 2011년 12월.
사무실에서 아이템을 찾고 있는데
선배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요즘 좋은 일 있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선배님 사실은..."
나의 표정을 귀신같이 읽은 선배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니 제가 한 달 전에 싸이월드에서 한 사람을 알게 됐는데 생각보다 말도 잘 통하고 공통점이 많아서 친해졌거든요. 그래서 오프라인으로도 몇 번 만났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크리스마스이브날 자기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 가자고 하더라고요."
"뭐? 크리스마스이브? 내일이잖아?"
선배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잘 알아보고 가라고 했지만
서울에서 연고하나 친구하나 애인하나 없던 나에게는 도파민이 마구 솟구치는 일이었다.
"에이그~ 선배님 설마 뭔 일 있겠어요? 걱정 마시고 제가 다녀와서 썰 풀겠습니다 기대하세요!!"
그리고 나는 퇴근 후
룰루랄라 벅찬 마음으로 여행 가방을 쌌다.
다음날,
크리스마스이브.
집을 나서는데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와... 완전 화이트 크리스마스잖아. 대박!! 분위기 죽이는구만~'
나는 들뜬 마음으로 커다란 가방을 들고 그 친구를 만났다.
“일단 우리 아침부터 먹을래?”
“응? 아침? 우리 여행 가야 되는데 시간이 돼?”
“아 배고파서. 내가 잘 아는 콩나물국밥집 있는데 가서 먹자”
머릿속엔 온통 여행뿐이었던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아이가 사주는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여행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눈도 오고 분위기 너무 좋다 그치?”
“어... 응...”
그날따라 그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혼자 업 돼서 떠들어댔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야 되지?"
"아... 그게. 일단 지하철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문정역으로 가야 해"
"문정역?? 거기가 어딘데?"
"8호선 문정역이야. 일단 가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의 행동이 이상했다.
자꾸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1분 단위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일단 가자"
우리는 8호선 문정역에 내렸고
그 아이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듣는 곳이야"
나는 당황했다.
"뭐? 마케팅? 강의?? 여행 가는데 웬 마케팅?"
"여행은 사실 핑계였고 너와 함께 마케팅을 배우고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싶어"
나는 깨달았다.
'아... 다단계구나..'
일그러진 나의 미간을 본 그 아이는 지금이라도 하기 싫으면 집에 가라고 했지만
그땐 왜 그랬는지 갑자기 작가의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다단계가 궁금했고
대체 거기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파헤치고 싶었다.
"알았어 가자!"
그렇게 그 아이의 뒤를 따라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며
한 건물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착한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나처럼 여행 가자는 말에 홀려 무방비로 당한(?) 20대 남녀 50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캐리어와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3명의 여자, 남자에게 둘러 쌓여 강당으로 연행(?)돼
다단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건 로션인데 흔한 로션이 아니거든요. 피부 재생이고 세포줄기를 이용해서..."
3시간 동안의 제품 설명이 끝나고 점심시간.
식당으로 가는 길 역시
내 양 옆으로 남녀 3명이 마치 호위하듯 나와 동행했다.
그 이후 화장실을 갈 때도
옥상에서 잠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고 할 때도
절대 날 혼자두지 않았다.
항상 2~3명이 나의 팔짱을 끼고 동행했다.
나는,
그렇게
지금 이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다단계뿐이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다단계뿐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개소리를
장장 8시간 동안 들었다.
'다단계 체험은 이 정도면 됐다.
이제는 진짜 탈출해야 한다.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X 될 수도 있다'
드디어 취침시간.
나를 하루 종일 감시했던 사람들은
오늘 찜질방에서 함께 자자며 나를 데려갔다.
나는
방송일 때문에 저녁에는 꼭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그들을 설득했고
가까스로 휴대폰을 돌려받은 뒤
새벽 3시로 알람을 맞춰놓고 손에 꼭 쥐고 잤다.
잘 때 역시 나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3명씩.
6명의 남녀가 날 에워싸고 잤다.
그리고 새벽 3시.
'찌잉~'
진동이 울리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10분 후,
그 아이를 비롯한 모르는 번호로 50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무음으로 바꾼 후 문정역으로 내려갔지만
아뿔싸!!
지하철 첫차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셔터는 굳게 닫혀있었고
지하철을 타기까지 장장 2시간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다
가까스로 24시간 운영하는 김밥집에 들어가
구석에 숨어 라면을 시켰다.
나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모습이 창밖으로 보였지만
다행히 나는 구석에서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그렇게 헐레벌떡 첫차를 타고
천만다행으로 그곳에서 탈출해 집으로 왔다.
휴대폰에는 10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독설 가득한 장문의 문자를 남기고
번호를 차단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8호선 문정역은 다단계 성지였다.
스물다섯.
서울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인연을 만들고자 했던 나의 순수함.
그것이 알고 싶은 작가적 호기심(?)이 만들어낸 환장의 컬래버레이션.
지금 생각하면 그날 내가 탈출한 건
다단계 회사가 아니라
스물다섯의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