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가 뜨면 작가는
아이템을 엎는다.

세월호 그리고 박근혜 탄핵 선고

by 애미라이터

방송 일을 하다 보면,

종종 국가적 사건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내가 방송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하나의 사건, 사고로 지나칠 수 있었던 일이

내 일상을 깊게 파고들 때가 있다.


2014년 4월.

M본부에서 저녁 생방송을 하고 있었을 때다.


아이템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속보가 떴다

고등학생 300여 명 등 477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는 뉴스였다.


뉴스가 뜨자마자

속보를 담당하던 PD 2명은 카메라를 들고 진도로 향했다.


그리고 3시간 뒤

368명이 구조됐으며 나머지도 계속해서 구조됐다는 뉴스가 떴다.


3층 교양제작국 사무실에서는

나머지 스텝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tv뉴스를 확인하며 안도했다.


하지만 30분 후,

현장으로 내려간 PD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거의 구조완료됐다는 뉴스 다 거짓말이야. 여기 지금 아무도 구조 안됐어. 학생들 다 바닷속에 잠겨 있다고!!!"

전화를 끊은 담당작가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피디에게 걸려온 전화내용을 전했고

제작국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당시 교양 제작국에는

8개의 프로그램 제작팀이 있었고

대략 50여명의 스텝들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4월 16일 오후 1시 30분.


아무도 구조되지 못했다는 피디의 전화에

일순간 고요해졌고

오직 tv뉴스속보 소리만 3층 교양국을 가득 채웠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기 위해

유가족들 전화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메인 언니의 말에

함께 일했던 작가는 그날 잠수를 탔다.


그리고 나는 세월호 참사 속보가 보도되던 순간,

제철 맞은 지역 특산물을 찾아

농장 섭외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구조가 됐다는 속보가 돌던 오후,

교양국 사무실을 채우던 침묵.

그리고 농장 섭외 전화를 붙잡고 있던 내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내가 방송 일을 하며 가장 오래 부끄러워했던 순간이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나 자신이 답답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국가적 사건은 더 이상 뉴스 속보로만 남지 않았다.


방송을 만든다는 일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일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 서게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또 한 번의 국가적 순간을 마주했다.


박근혜 탄핵 선고였다.


2017년 3월.

나는 MBN에서 방송되는 일명 떼토크쇼를 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정치, 경제, 연예 등 다양한 사건을 아이템을 잡아

최소 5명 이상의 패널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튜디오 토크 물이었다.


녹화날을 3일 앞두고 '대선의 추억' 이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준비하고 있었다.


패널 인터뷰와 대본 작업은 보통 며칠 밤을 새워야 끝나는 일이었고

나 역시 대본을 쓰느라 이틀째 밤을 새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전국에서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3월 10일 오전 11시.

녹화 이틀 전날,

작가들은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틀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선고됐다.


아... 탄핵..!


그리고 탄핵 선고와 동시에

MBN 교양국 국장의 지령이 떨어졌다


"지금 준비하는 아이템 엎고 박근혜와 그 일가로 바꿉니다.
자, 파면된 대통령 그리고 남겨진 의혹들로 준비하세요"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녹화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아이템이 엎어지다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희망이 보이던 순간이었지만

방송을 준비하던 작가로서는

정말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이미 이틀 밤을 샜는데

앞으로 48시간을 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작가팀은

극한의 상황에서 다시 방송을 준비했고


패널과 전문가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녹화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탄핵선고 이후


나는 여전히 아이템을 엎고,

섭외전화를 걸고,

대본을 쓴다.


국가적 사건은 멈추지 않고

방송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나간다.


다만,

이제 속보가 뜰 때


사건보다 먼저

사건의 옆자리에 있는 '내 목소리' 를 의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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