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디에이터

방송 끝나고 밤마다 스파링을 뛰던 이유

by 애미라이터

방송을 하다 보면

가끔 내가 운동선수인지 작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갑자기 섭외가 빨리 끝나

칼퇴를 하는 날에도,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날에도,

이틀 밤을 새운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체육관으로

혹은 도장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처음엔 살을 빼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알게 됐다.


이만큼 스트레스를 빨리,

확실하게 날려주는 건 별로 없다는 걸.


전혀 예상 불가능한 도라이들이 널뛰는 방송판에서


내 정신적, 육체적 지주가 되어 준

운동들이다.





# 무에타이


무에타이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8월이었다.

그리고 2026년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무에타이를 하고 있다.


도장은 계속 바뀌었다.

고향에서,

신촌에서,

신대방삼거리에서,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까지.


사례자에게 욕을 먹었을 때도,

신박한 아이템을 못 찾고 허우적거릴 때도,

본사 부장으로 있다가 깨졌을 때도


나는 도장으로 갔다.

당시 무에타이 도장에서 수련(?) 중인 나


당시 받았던 상장. 무에타이에 진심이었던 나


쉐도우 복싱을 하고,

샌드백과 미트를 다리와 팔에

멍이 들 때까지 쳤다.

그리고 스파링을 했다.


이상하게도

방송 일이 안 풀릴수록

무에타이를 하고 나면

몸에서 호랑이 기운 같은 게 솟아났다.


운동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날,

출근 할 힘은 생겼다.




# 스피닝


스피닝을 만난 건 2014년이다.

처음엔 그냥 자전거 타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귀를 때리는 클럽 음악과 현란한 조명

안무까지 있는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2년 정도를 했는데,

너무 좋아서 자격증까지 딸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5평짜리 좁은 원룸에 스피닝 자전거를 들여놓고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탔다.


결혼할 때

내 혼수 중 하나도 스피닝 자전거였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임신한 줄 모르고 탔을만큼

나에게는 운동 이상의 운동이었고


섭외 스트레스, 아이템 스트레스, 대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만큼

중독성 강한 도파민이었다.


스피닝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방송일을 때려쳤으리라.





# 한강 파워워킹


원효대교와 서강대교.


내가 2년 동안

수십 번, 수백 번도 넘게 걸었던 다리이자

나의 출. 퇴근 길이었다.


한파에도,

장마에도,

폭염에도.


나는.

걸었다.


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까지 가려면

원효대교 혹은 서강대교를 건너야 했다.


어느 날은 서강대교

어느 날은 원효대교 위를

미친 듯이 걸었다.


걷다가 사례자에게 섭외 전화를 한 적도 있고

걷다가 메인언니에게 전화로 깨진 적도 있었다.


한번은

다리 위에서 파워워킹을 하며 출근하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


“설마 너 지금 헬기에서 전화 받는 거 아니지? 왜 이렇게 시끄러워? 바람 소리야 뭐야~”


어느 날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나게 서강대교 위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카메라를 어깨에 멘 남자들이

우르르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오 촬영하나? 고생하네~’


그리고 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해양경찰과 배 한 척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 남자들은 k본부 ‘다큐 3일’ 촬영팀이었고

한강에서 뛰어내린 사람을 구조하는 해양경찰을 찍고 있었다.


한강 다리 위를 걸으면서

나는 수많은 풍경을 보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바라본 한강의 모습은

화려하고

시끄럽고

쓸쓸하고

불안했다.


어쩌면,

그때 내 마음이 그랬었으리라.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하고 무식했다.

그래서 더 오래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19년 동안 방송작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도,

운도,

근성도 아니었다.


방송이 안 풀리는 날에도

누군가에게 깨지고 돌아온 밤에도


도장에 가서

몸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걸으며

땀을 흘릴 수 있었던 것.


운동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내일을 다시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줬다.


내 인생에 컬러바를 띄우지 않고

쉼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땀 냄새와 습기 가득한 체육관 바닥과,

자전거 안장 위,

그리고 한강 다리 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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