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대신 방송국을 선택한 스물 두 살

2007년, 방송국 입문기

by 애미라이터

2007년.

취업과 휴학 그 애매한 사이에서 갈팡지팡하던

대학교4학년이었고

학생신분으로 맞이하는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당시 나는 박카스에서 매년 진행하던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합격자가 발표되던 날,

학교 도서관 2층 종합시스템실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발견했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


당시 내 청춘에 불을 지폈던 국토대장정 합격자 명단. 당시 방송국 vs 국토대장정은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국토대장정 출발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던 그때,

운명의 장난처럼 지방 M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촬영구성안 잘 봤습니다. 면접 한번 보실래요?”


당시 신방과였던 나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방송작가가 되기위해 자기소개서와 촬영구성안을

무작정 메일로 보냈는데 메일을 보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면접을 보러 갔고

방송 경력이 전혀 없던 내가 쓴 촬영구성안이

5년 차 작가의 구성안보다 낫다며,

내 구성안에 반했다는 피디님의 말에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면접날 나는 덜덜 떨며 (무슨 패기였는지) 피디님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다.

국토대장정에 이미 합격했고, 다녀온 뒤에

방송 일을 시작하면 안 되겠냐고.

그러자 피디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음료수도 아니고 약도 아닌 것이... 박카스 대장정 그거 가지 말고,
우리랑 일해요.”


그 한마디에

나는 국토대장정을 포기했고,

그렇게 방송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금 다시 보면,

그때 내가 쓴 촬영구성안은 솔직히 엉망이다.

하지만 무경력 대학생이 쓴 글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방송국 지원을 위해 구성안을 쓰던 이틀 밤이다.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아, 너무 재밌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때 할머니는 방송국에 들어간 나를 위해

떡을 하셨고 그 떡을 경로당에도 돌리고, 방송국에도 돌렸다.


엄마 역시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그렇게 나는, 얼떨떨한 상태에서 운이 좋게 방송국이라는 세계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그 선택이

이후 18년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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