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급 15만 원에 세상 행복했던 22살의 나
나의 첫 월급은,
정확히 말하면 주급 15만 원이었다.
그렇게 지방 방송국에 입문한 나는
출근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피디의 호출을 받았다.
페이 이야기였다.
계약서는 없었다.
단 한 장도.
오로지 구두 계약.
“애미라이터님 페이는 주급 15만 원이고요, 매주 입금될 거예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 마저도
‘주급’이라는 말을 ‘월급’으로 잘못 들었다.
그리고 한 달 뒤에야 깨달았다.
월급은 15만 원 × 4주 = 60만 원.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진심으로 펄쩍펄쩍 뛰었다.
와,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방송작가를 하게 됐는데
돈까지 이렇게 많이 준다고?
지금 생각하면 신고당해도 할 말 없는
열정 오브 열정페이 썰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마저도 감지덕지였다.
주급 15만 원을 받으며
나는 매일 아침 10시 M본부 7층 작가실에 출근했다.
그리고 매주 한 편씩 VCR을 ‘말았다’.
여기서 말았다는 건 국밥 말듯 말아먹었다는 뜻은 아니고,
방송국 은어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책상에 쌓여있는 7개 신문사에서 발행한 신문을 뒤져 아이템을 찾고
(그땐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아이템은 신문이나 잡지에서 찾아야 했다)
피디님, 국장님과 아이템 컨펌을 받고
사례자와 현장을 섭외해 촬영구성안을 쓰고
촬영 후 편집을 거쳐
원고를 쓰고 자막을 얹어
종편까지 완료하는 전 과정을 말한다.
이 모든 걸 주급 15만 원으로.
그리고 나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막내작가에서 바로 메인작가로 입봉 했다.
보통 작가의 루트는 이렇다.
막내작가 → 서브작가 → 메인작가.
입봉이란
자기 이름을 걸고
기획부터 완성까지
온전히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방송작가 세계에서 입봉은 원래 아주 까다롭고 어렵다.
그런데 나는 입사 한 달 만에 입봉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시스템이었지만
작가에 대한 체계도, 인력도 부족했던
지방 방송국에서는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나는 입사 한 달 만에 메인작가가 되어
내 이름을 건 첫 VCR을 '말았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첫 아이템은 또렷하다.
〈MBC 생방송 전국시대 – 송이버섯〉
그렇게 아이템을 정하고 이틀 동안 촬영구성안을 썼고
담당 피디님께 컨펌을 받아 촬영을 위해
우리는 속리산으로 향했다.
10kg은 족히 넘는 거대한 ENG 카메라를 어깨에 멘 카메라 감독님,
피디님,
리포터 선배님,
그리고 나.
현장에서 말도 안 되는 시바이를 치며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그때 나는 촬영만 끝나면
작가의 할 일은 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나의 아주 큰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