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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Apr 15. 2020

낯선 엉덩이가 주는 극도의 두려움

'평일아마'의 기억

"연필나무*, 나랑 같이 화장실 가자."


한 아이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함께 화장실로 갔는데 그 아이는 변기에 앉아 '끄응-'하며 똥을 누었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보며 헤헤- 웃었다. 휴지를 뜯어 아이의 뒷처리를 해주려는데 '낯선 아이의 하얀 엉덩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살성도 다르고 낯선 아이의 엉덩이를 보며 적잖은 당황감이 내게 엄습했다.


"연필나무!"


© 비단거북이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날 재촉했다.


"어? 어 그래."


이날 나는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똥을 닦아주는 첫 경험을 했다. 이때가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일일교사 같은 '평일아마' 활동을 하는 첫날이었도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낯선 기억이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날 편하게 대하며 부탁을 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나의 감정과 당황스러움과 관계없이 '평일아마'로서 아무렇지 않게 똥을 닦아주는 한 명의 교사나 아마에 불과했다. 눈을 꼬옥! 감고 아이의 대변을 깨끗이 닦아주고 난 뒤 그 아이의 만족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도 나는 평일아마를 할 때마다, 오후아마를 할 때마다, 우리집에 어린이집 아이들을 마실 초대 할 때마다 자주 똥 닦아주기 부탁을 받고 실행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젠 나도 어린이집 교사인마냥, 그 아이의 엄마이기라도 한 마냥 익숙하고 편안하다. 때로 다른 부모도 우리 아이의 똥을 닦아주며 똥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얼마전 새로 들어온 5살 여아가 내게 조심히 다가왔다. 어린이집 앞 모래놀이장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내게 온 것이다. 그리곤 내 손을 지그시 잡고는 내 귀에 대해 조심히 말한다.


"연필나무, 나 똥이 마려워."

"그래? 그래, 같이 가자. 여기로 와 봐."

"연장반 교사 봄바람도 계신데 봄바람에게 부탁해봐."

"연필나무......"


아이와 손을 잡고 어린이집 실내로 간다. 그러자 어린이집 안에 계시던 교사가 우리를 맞아주신다.


"무슨 일이예요?"

"윤서가 똥이 마렵다고 해서요."

"그래요? 윤서야 어서 들어와. 윤서는 배변이 예민한 아이예요. 제가 데리고 가서 함께 해줄게요."


교사는 아이와 다정히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가신다.


'새로운 아이가 나를 편하게 생각해서 이렇게 이야기해줬구나!'


괜시리 으쓱하다.

이젠 이런 아이의 말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쁘다.


아아, 이렇게 조금씩 나도 내 아이뿐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많이 성장했구나, 연필나무.


내 스스로 토닥토닥해줘본다.



* 연필나무 : 필자가 공동육아어린이집 내에서 불리는 별명






*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쓴 부모 에세이도 함께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brunchbook/hamk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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