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재범 Jul 08. 2019

그 스웨터의 두께를 기억해

혼자 술을 마시다 내 삶의 첫 데이트가 또렷이 떠올라 눈으로 소주를 쏟았다.

왜 갑자기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 건지 모를 일이다.

내 삶의 첫 데이트.

삼성동 코엑스.


여전히 쌀쌀한 날씨였나 보다.

너는 하얀색과 분홍색이 섞인 얇은 스웨터를 입었다.

포슬포슬한 스웨터.

네 어깨에 손을 얹고 나는 그 스웨터를 만졌다.

그래서 안다. 그 스웨터의 두께를.

스웨터를 만지는 일은 나에게 거대한 용기였다.

타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연약한 발돋움이었다.

손을 잡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손을 잡기까지 22일이 걸렸다는 걸 기억한다.

그날까지도 손을 잡지 못했던 것인지, 손을 잡고 코엑스를 거닐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네 눈에는 순수와 호기심이 뒤섞여 있다.

너에게도 나는 새로운 세계였던 거다.

우리는 나름대로 야릇한 눈빛을 품고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며 밥을 먹었다.

 

나는 네 코에 집중했다.

너의 코는 네 눈의 예쁨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네 코를 사랑하려 무던히 나를 몰아붙였다.

사랑하려, 사랑하려고.

나는 나를 속이고 모른 체했다.

너는 눈이 예뻤고 코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네 코를 사랑하려고 무던히도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도림동 대하빌라 A동 201호 지선이네 아줌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