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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범 Jul 29. 2017

새벽 술

해가 어스름해지기를 기다렸다. 다섯 시면 해가 뜬다. 네시 사십분쯤 나가서 막걸리 한 병을 사왔다. 방의 불은 일부러 꺼뒀다. 이 시간의 핵심은 창문으로 느껴지는 푸르스름한 감성이다. 해가 뜨기 직전의 감성은 해가 질 무렵의 감성과 다르다.

 

해 뜰 무렵은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만의 맛이 있다. 오늘은 그 맛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술은 진부하다. 밤의 술은 날 긴장하게 만든다. 낮술은 흥겹지만 보는 눈이 많다. 새벽 술은 그 모든 인식으로부터 날 떼어 놓는다. 난 시간을 즐긴다. 아침 냄새를 맡는다. 막걸리를 목구멍이 아니라 혀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밀어 넣는다.


가슴 속에서는 담배 연기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난 느긋하다. 난 이 한 병의 막걸리를 끝까지 나만을 위해 마실 거다. 그리고 막걸리 통이 비워지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고 버틸 거다. 시간을 즐기고 술맛을 즐기고 그 뒤에 내가 가장 원하는 그 마지막에 담배를 피울 거다. 니코틴에 중독된 내 신체와 타협하지 않을 거다. 새벽 술은 나만의 일탈이다. 반항이다. 옹졸한 고함이다.


라디오에서 웬 성악곡이 나온다. 가사는 애절한데 성악가는 성악을 하는 데만 혈안이다. 테크닉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다. 그래 너 성악 잘한다. 근데 말이야 우리가 울 땐 그렇게 멋들어지게 울지 않아. 가장 치욕스러운 자세로, 표정으로, 목소리로 울지. 가장 찌질한 순간에, 진짜 한심한 장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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