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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Nov 19. 2021

시험이 너를 죽이지 않는 나라

너의 소중한 삶은 그깟 시험에 비할 것이 못 된다.

이제 이틀 뒤면 수능이구나!


내 새끼들, 잠시 1년이었지만 내 품에 있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너희를 사랑했었는데.

너희의 꿈 하나 하나가 내 수업의 이정표였고,

설령 그게 '장래희망이 뭐니?'라는 내 질문과 너의 답까지의 단 0.5초의 찰나에 튀어나온

가벼운 임기응변이었을지언정

너희의 미래는 내 사명였단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에 진학하여 수학할 능력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지?

그 날은 온 대한민국이 오롯이 너희만을 바라보고 있잖아.

날아가는 비행기도 멈추고,

전국의 모든 출근자들도 한 시간 늦게 업무를 시작하고,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채소장수 아저씨마저 메가폰을 종일 끄시는 날이야.


수능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또 어떻고.

어떤 분은 학교 교문에 커다란 엿을 붙이시고.

예수님도 부처님도 얼마나 바쁘시게, 들어야할 간절한 기도와 절이 넘쳐나니.

부모님들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뭐 하나 손에 안잡히고 떨리고 또 떨리는 날.


이렇게 온 나라가 너희를 보며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으니,

얼마나 긴장되고 또 부담스러울까.

선생님인들 수능을 안 쳐 봤겠니,

아직도 두 번 겪고 싶지 않은 압박감인걸. (사실은, 나의 선택으로 재수를 해서 두 번 치긴 했어.)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

대학을 잘 가야한다.

대학만 잘 가면 다 된다.

대학이 곧 너희를 결정짓는다 자꾸 말하잖아.


나는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말.

아직은 짧은 내 교직인생 11년,

그 중 10년을 함께 한 6학년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말들.

선생님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 말이야.


대학은, 그냥 너의 인생의 또 다른 과정일 뿐이야.

그래, 좋은 대학엘 나오면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지.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가면 인생의 옵션이 늘기도 하지.

하지만 겨우 스무해 남짓한 너의 인생이,

아직 채 영글지 못 해 다소 서툴렀던 너의 노력이,

완벽하게 평가받지 못한 너의 수고가

앞으로 이어질 남은 긴긴 인생을 완결짓지는 않아.


다섯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더 좋겠지만,

  중에 하나를 택한다고 너의 선택이 망한건 아니란다.

확률이란건 내가 걸리면 100퍼센트라고들 그러지?

너의 선택 역시 긍정의 100퍼센트일 수 있다구.

어쩌면, 너에게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진 세 개의 선택지가

되려 전부 다 긍정의 선택지일 수도 있는걸?

네 인생을 남보다 두 개 적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절망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대학만 가면 다 되지도 않고,

대학만 잘 가면 되는 것도 아니야.

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고 해서,

삶의 답이 정해지는건 아니란다.

어떤 때는 그토록 원하는 대학엘 갔다가, 그 성공에 발이 묶여

되려 삶이 좁아지기도 하는걸.

너희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는 또 해봐야 아는 문제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정적이고 섣부른 말들과

그깟 시험에 멈춰버리는 비행기들이

너희에게 너무 큰 짐으로 다가가


이제 겨우 한 번의 작은 실패일 뿐인데

너무 어린 누군가의 정신을 피폐하게,

또 한 없이 찬란할 누군가의 인생을 포기하게 할까봐


이미 너무 광기가 되어버린 수능날 아침 풍경이

선생님은 기괴하기만 하구나.

이 광기가 당연시 되는게 정말이지 불편해.

너희가 잘되길 바라는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폄하하는게 아니야.

그런 마음들이 집단이 되어 제도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시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생각하는거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오늘도 별  아닌 하루라고 다독여주면 안되는걸까.

어느 누군가에겐 그를 위한 간절한 기도보다는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덤덤한 미소가

더 힘이 될 지도 모를텐데.


얘들아!


수능 잘 치지 않아도 좋아.

못 쳐도 괜찮아.

그냥 결과 그대로 받아들이든, 더 잘치려고 한 번 더 도전하든

결정도, 그에 따른 책임도 너 스스로 받아들이는게

수능 점수를 잘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잘 친 아이들도, 못 친 아이들도

잘 치고 못 쳤다는 판단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데.

내가 만족하면 성공인거고,

내가 만족하지 못 한다면 그것도 나의 일부라도 받아들이거나 한 번 더 도전하면 그만인건데.


잘 쳐도 못 쳐도 그 기준이 세상이고, 사람들의 시선이고, 부모님의 기대가 되어버릴까봐.

누군가보다 못 친게 자존심 상하고

누군가에게 눈총 받을까 두렵고

누군가를 실망시킬까봐 괴로워서,

그래서 너희가 행복하지 않다면,

너희의 삶이 그걸로 실패한거라 느껴진다면.


이 시험은 분명 뭐가 잘못된거야.

너희의 탓이 아니야.


'시험 꼭 잘 쳐라, 이제 거의 다 왔다, 이 것만 잘 치면 끝이다.' 같은 말들 보다 선생님은

'그간 힘들었겠다, 편하게 다녀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여기에 내 인생이 걸렸다는 둥,

오늘로 모든게 결정난다는 둥,

그딴 생각 다 집어치우고.

아, 그냥 시험이구나. 하고 편안한 마음이길.

그저 시험일 뿐이고,

앞으로 다가올 더 긴 미래에

지나가는 하나의 문일 뿐이라는 점 잊지 않길.

그래도, 시험이 끝난 날 저녁에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며 세상 없을 달콤한 휴식은 꼭 즐기도록 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내 새끼들, 잘 다녀와!

아, 시험 오고 가는 길에 차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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