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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Jun 02. 2022

진보교육은 불편하다?

'드디어' 진보교육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누군가의 글에 부쳐

나는 초등학생을 교육하는 교사이다.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우리 교사들에게 강조 혹은 강요되는 덕목 중에 하나는 '정치적 중립'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용에 있어서도, 교육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우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

물론 역사교육을 하며 쉽지는 않지만 나는 내 있는 힘껏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늘 애를 쓴다.


하지만 교육 방식에 있어서 나는,

나의 교육적 성향을 오늘에야, 12년 차의 중반을 지나는 오늘에서야 드디어 깨달았다.


초등교사 커뮤니티의 오늘자로 올라온 한 글을 읽으면서, 드디어 모르고 있던 자아를 찾게 된 것이다...!


해당 글의 요지만 옮기자면 대강 이러하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 자신의 근무지는 진보교육감의 시대가 끝이 난 듯하다.'

'솔직히 진보후보나 보수 후보나 말만 다르지 결국 학교에 아이들의 보육을 맡기겠다는 뜻은 같았기에, 이 놈이나 저 놈이나 교사 입장에서는 그저 짜증이 날 뿐이다.'

' 다만, 보수 교육감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산만 잡아먹는 혁신학교그놈의 성장 중심(필자의 근무지에서는 '과정 중심') 평가 좀 없애고 학력신장에 집중 좀 해주었으면.'

'초등학교에도 최소한 기말고사 정도는 부활해 아이들이 긴장하고 공부할 여건이 좀 마련되었으면.'

'그간 진보교육감들 지휘 하에 이루어진 성장 중심 평가로 아이들이 성장했느냐는 질문에 적어도 나는 그저 학교가 더 이상 공부하는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으며, 학부모들에게도 자신의 자녀 수준을 결과로 명확히 알렸으면 한다.'

'성적 좋은 아이들은 상도 주고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며,

연말이면 의미도 없이 누구는 체육상 누구는 봉사상 누구는 창의상 이런 거 말고,

공부 잘해서 시험 잘 본 학생은 우수상도 주고 표창도 줘서 열심히 잘하는 친구들이 보상받고 인정받기를.'


이 글의 댓글 중 기억에 남던 하나도 옮기자면 이러하다.

'선다형 문제를 악마 화하고 서술형 문제만이 정답인듯하던 세상이 끝나기를.'


이들 덕에 나는 오늘 내가 적어도 교육관에 있어서는 철저한 '진보'임을 깨달았다. 아, 고맙기도 하지!



그래, 교육과 보육을 구분도 못하고 그저 학교에서 애들을 잘 맡아주기만 하면 전 국민을 열심히 뺑뺑이 돌려 일꾼으로 부려먹겠단 생각에는 나도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나는 교육자라 보육하기 싫어 짜증이 난다는 뜻을 넘어서, 구 공산주의 국가들이 행하던 집단보육에 대한 거부감과 동시에 결국 부모가 직접 양육할 수 있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근거는 다를지나, 이 부분에서만큼은 결과론적으로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했다.



예산만 잡아먹는 혁신학교?


하지만, 교사를 잡무에서 한 발 물러나 좀 더 수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구조 자체를 개혁하겠다는 취지의 '혁신학교' 정책이 돈만 잡아먹고 있다면, 그건 이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일선 학교(의 혁신을 잘 이해하지 못한 관리자)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나는 생각한다. 또한, 그 취지가 명확하다면야 전면 철회보다 보완 발전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혁신학교가 그저 돈만 잡아먹고 아무 의미 없는 정책이었던가. 혹시, 혁신학교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과 불신이 있었던 건 아니신지 묻고 싶다.



서술형 평가가 선다형 평가를 악마화 한다?


  어떠한 형태의 평가이든 완벽한 방식은 없다. 그 어떤 교육정책도 선다형 일몰을 요구한 적도 없을 것이다. 성장 중심, 과정 중심 평가의 방식이 오로지 서술형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자는 뜻인데, 포트폴리오를 쓰든 단순 관찰이든 참된 평가가 가능하다면 어느 방식인들 문제가 되겠는가.


  굳이 서술형 평가의 가장 큰 단점을 생각해보자면, '채점의 어려움'이라 볼 수 있을 것인데, 이 '채점'이라는 건 철저히 평가자 입장의 관점이다.  애초에 정답은 하나이고, 이를 벗어나면 모두가 오답인 평가라면 그거야말로 구시대적이고 폭력적이지 않는가? 정말 채점이 간편하며, 줄 세우기 간편하면서도 누군가를 기준에 맞게 평가하기 쉬운 선다형 문제들... 물론 서술형과 선다형이 혼재하여 교과목의 성질에 맞게 적절히 구성되는 게 가장 좋은 평가방식이겠지만, 적어도 서술형 평가 존재의 의미가 선다형을 악마로 만들기 위함은 아닐 텐데, 서술형 평가를 너무 폄훼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초등학생들도 다시 기말고사 치고, 성적도 확인해야지?


  그렇게 채점하기 손쉬운 선다형 문제들 초등학교에 '기말고사'를 부활시켜, 그 결과로 학력을 가늠하고 학부모에게도 자녀의 '수준'을 알리며, 그에 맞춰 '성적 우수상'을 수여하여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도 부여하고, 이제는 '의미 없는 창의상 체육상'같은 건 폐지하자?

  딱 10년 전, MB정부 시절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매달 '일제고사'를 실시하던 시절이 딱 이러했다. 당시 신규교사로 첫 6학년 담임을 맡았던 나는 이 아이들이 괴물로 자라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매 시험 때마다 점수가 안 나오면 그냥 더 공부 열심히 하면 되는 거라고, 너무 의미 두지 말라고 아이들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그 결과에 집착한 건 담임교사인 나였고, 총 여섯 반 사이에서 우리 반이 평균 꼴찌가 나오는 과목은 미술시간, 음악시간을 자체 취소하고 보충수업을 하고는 했다. (어떤 지역은 암암리에 초등 야자를 행하기도 했다는 댓글을 보았다.)

  선다형 문제를 잘 푸는 아이들은 훌륭한 인간인가? 어쩌면 '시험의 기술'을 잘 갖춘 것일지도 모르는 아이도 어쨌든 성적이 좋으니 무조건 우수한 인재인가? 한국전쟁이 몇 년도에 발발했는지는 기억 못 하지만 이산가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학생은 사회 65점짜리 둔재이고, 늘 성실하게 과제를 해오지만 분수의 나눗셈 단원평가를 반밖에 맞추지 못하는 학생은 졸업하는 그날까지 상장 한 번 받지 못할 그저 그런 사람인 것일까? 1년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어느 학생이 미술시간에 제출한 기가 막힌 그림을 기억해내고 연말에 담임교사가 수여한 '예술상'은 아무런 의미 없는 종이조각인가? 좋은 시험 결과로 받은 '우수상'과 '표창'은 공부시키기 위한 훌륭한 보상이면서? (애초에 1년을 함께한 아이의 단 하나의 장점도 발견하지 못해 억지로 상 이름을 지어내야 하는 담임교사라니...)


  저 글의 아주 초반으로 돌아가, 시험이 없는 학교는 '공부하지 않는 곳'이며, 공부하지 않는 학교는 존재가치도 없는 것일까. 시험을 치지 않는 학교는 공부하지 않는 학교인가? 이 논리라면, 코로나 시국에 겪었던 온라인 수업이야 말로 미래를 이끌어갈 훌륭한 학교의 대체제여야 했을 것인데...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수업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그 어떠한 가치인들, 선택은 학생 스스로가 해야 하며 교사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만 할 뿐이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을 실현함에 있어서는, 나는 그래도 진보이고 싶어졌다.

지금보다 더 나은, 지금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변화하는 교육자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쩌면, 가까운 나라들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보수교육은 우민화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 세대의 교사들이, 지난 과거의 보수적이던 교육을 통해

진보적인 교육과 '빨갱이 교육'을 구분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진보교육, 보수교육은 불편하다.

하지만 교육이 조금 진보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저 단순히 바라는 건 철저한 개인의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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