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의 헛소리라고 치부하지 않을 의무
12년의 내 경력을 정리해보자면
6학년 영어전담 4년, 6학년 담임교사 6년, 5학년 담임교사 1년,
올해 1~2학년 안전 및 3~5학년 음악전담.
10년을 넘어가는 경력인데, 저학년 및 중학년이 (비록 전담일지라도) 올해 처음이다.
남들은 내가 억지로 등떠밀려 6학년을 맡았거나, 혹은 힘든 6학년을 희생정신으로 맡았으리라 짐작하며
나를 추켜세우지만
저학년이 무서운 이유를 설명하려니,
마침 유명 배우의 어느 인터뷰에서 너무도 정확하게 내 마음을 표현해두었더라.
저학년 수업을 만 3개월을 채워 1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어느 부장님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수업을 제일 기다리고 좋아합니다.'라고 해주시고,
어느 선생님은 '그렇게 겁내더니, 아아주 애기들을 들었다놨다 잘만 하더만.'라고도 평가해주신다.
그런 말씀들에 뿌듯하기도 하고,
실제로 생각보다 훨씬 더 할만하고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40분 딱 한시간만 만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병아리들은 생각보다 옹골차고,
나 역시 계속 얼만큼 쥐어야 터지지 않을 정도로 쓰다듬을 수 있는지 적절점을 잘 찾아 나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
거의 '날아라 병아리'급의 가볍고도 가벼운 1학년 친구와
꽤 오래 나의 눈치를 보느라 속내를 숨기고 있던 바로 그 1학년 친구와 처음으로 맞서게 되었다.
나 역시 늘 남일처럼 웃었던 "그게 초등학생일 지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맞짱을 뜬다"던 짤이
마침내 내 일이 되고야 만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문제의 친구를 ㄱ이라고 하겠다.
ㄱ 주변에 앉은 ㄴ과 ㄷ이 수업이 시작하자마 내게
'선생님, ㄱ이 저를 화나게 해요!'하고 하소연을 해대고
동시에 ㄱ은 '아 너한테 한 말 아니라고!!!'하고 악을 악을 써댄다.
ㄴ과 ㄷ은 일관되게 진술한다.
ㄴ, ㄷ: ㄱ이 우리에게 "어쩔티비 저쩔티비, 약오르쥬, 죽이고싶쥬, 그런데 나 어디사는지 모르쥬, 우리집 주소 모르쥬"라고 약을 올린다.(쓰면서도 현타가 오지만, 절대 아이들에게 이를 하찮은 일로 치부할 수 없어 최대한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 진술을 들어야 했다.)
이에 관한 ㄱ과 나의 대화의 흐름을 정리해보자면 이러하였다.
ㄱ: 쟤들을 보고 한 말이 아니다!
나: 그럼 누구를 보고 한 말이냐?
ㄱ: 그냥 혼자 말 한거다.
나: 근데 친구들 두 명이나 너의 말을 들었다.
ㄱ: 내가 혼자 말 한걸 쟤들이 들은거다.
나: 왜 그런말을 했냐?
ㄱ: 그냥 했다.
나: 그게 나쁜말인지 알고 있느냐?
아, ㄱ이 너무 진심이다, 진실로 이는 반항이나 말대답의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욕 하나 섞이지 않은 이 말이 왜 문제가 되냐는,
정말이지 순수한 의문이 가득한 표정에
나는 종교가 없어 일단 오은영 박사님을 간절히 떠올렸다.
침착하고, 기세에 밀리지 않고, 단호하지만 공포스럽지 않게 나는 이 친구를 상대해야한다.
다행히도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이를 맞받아쳤다.
나: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은 나쁜말이야.
명성/악명은 괜히 따르는 것이 아니다, ㄱ 역시 지지않고 기세좋게 이를 맞받아친다.
ㄱ: 쟤네한테 한 말 아닌데? 혼잣말인데??
여기서 밀릴 수는 없다.
나: 하지만 다른 사람이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지 않느냐. 심지어 들은 두 친구들이 서로 '나에게 한 말인가' 고민하고 기분나쁘게 만들었으니, 그게 더 잘못된 것이다. 이유도 없이 너에게 기분나쁜 말을 듣게 된 친구가 둘이나 된다.
ㄱ: 혼잣말이라니까????
나: 듣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혼잣말이 아니다.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게 되면 누구라도 들을수 있는 말이다. 듣는 사람이 기분나빠졌기 때문에 니가 한 말은 나쁜말이다.
ㄱ은 만만치 않다, 약이 바짝 오른 채로 다시 반격이 이어진다.
질 수 없었다. 나의 지난 11년을 걸고, 1학년 어린이들 앞에서 나는 맞짱을 뜨고 있었다.
어떡하면 여덟살 꼬마의 눈높이에 맞게, 하지만 선생님으로서의 권위는 실추하지 않고 이를 훈육할 것인가.
오은영 박사님이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나: ... (ㄱ을 최대한 경박스럽게 삐죽삐죽 흉내내며) "선생님, 정답이 뭐에요?"
(다시 나로 돌아와) "어쩔티비 저쩔티비 모르겠쥬, 정답 알고싶쥬, 근데 안가르쳐줄거쥬, 짜증나쥬, 죽이고싶쥬, 근데 선생님 어른이라 말대꾸 못하쥬, 선생님 주소 모르쥬?"
나의 모놀로그에 드디어 ㄱ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번 공격이 치명타로 먹혀들었다! 이 기세를 몰아가야한다!
나: ㄱ 지금 기분이 어떠니?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아? 선생님 욕 한마디도 안했는데 너는 어떠니?
ㄱ은 아무말 하지 않는다.
나: ㄱ은 답을 알고있는 것 같아.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ㄱ이가 한 말은 욕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 정말 나쁜 말이야. ㄱ이가 들어서 기분이 나쁜 말이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기분이 나빠.
ㄱ의 표정이 점점 풀린다.
나: ㄱ이가 한 행동이 왜 잘못 된건지 알겠니? 우리 ㄱ이는 선생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아.
약 두 번 정도의 고집을 지나 결국 ㄱ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 그럼 ㄱ이가 준비가 됐을때 언제든지 ㄴ과 ㄷ에게 사과를 해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내 교직 평생 단 한번도 '이제 둘이 악수해!', '사과해!', '괜찮다고 해!' 방식의 지도를 해 본 적이 없다.
진심 없는 화해 종용은 내 마음 편하자고 시키는 아이들의 연극이고,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일종의 폭력이라는 내 나름의 교육 철학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늘, 아이들 간의 갈등을 지도할때는 객관적 상황을 파악한 후 과실비율(?)을 정리해주고 각각을 분리해 훈육한 후, 화해는 그들의 몫으로 남기며 지도를 마친다. 그럼 희한하게도, 꼭 돌아서며 즉시 먼저 사과하는 놈과, 그 사과를 멋쩍게 받아주며 역사과 하는 놈의 아름다운 대화로 갈등이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저학년에게도 이게 먹힐까?
돌아서는 나를 ㄱ이 붙들었다.
혹여나 주로 저학년에서 나타나는 습관적 미안증후군의 증상일까 나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나: 지금 바로? 왜?
ㄱ: 미안해서요.
호오?
나: 그래, ㄱ이 하고싶은 대로 하렴.
아,
내가 의도했던 바가 정확하게 언급되는 사과라니. 그것도 1학년 병아리의!
내가 열혈시청해 마지않는 '금쪽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마지막 멘트도 잊지 않았다.
나: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하라던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끌어내어) 우리 ㄱ이가 진심을 담아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구나.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ㄱ이 기특하다. 이제 친구들이 기분나빠할 말은 하지 않는걸로 하자.
물론 나도 알고있다. ㄱ은 또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될 지언정
나는 이 지독한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초등학생과의 맞짱"을 피해서는 안된다.
어른의 눈에는 하찮고 유치하고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크고 어려운 역경일 것이다.
오늘의 이 훈육이 내일의 너를 새사람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길고 어려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너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내 기를 몽땅 빨아가도 좋다, 이로써 너희가 성장하게 된다면.
어린이는 작지만, 어린이의 세계까지 작다는 뜻이 아님을
12년차에 다시 한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