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우울증의 문턱에 서서 정리해보는 생각조각들
Y2K때문에 죽을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쯤에 떠돌던 이야기이다.
석유는 곧 고갈될 것이라고 했고, 오존층 파괴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비과학적이든 과학적이든,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돌았고
다행히도 한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그러한 이야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이다.
점점 거짓 프로파간다라고 외치던 목소리는 줄어들고있다. 왜?
진짜 매년 여름 기겁할만한 속도의 변화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이상 여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원래도 기온이 널뛰는 나라에서 마자 체감이 되고 있다면
정말이지 기후위기이며 기후재난이다. '지구온난화'는 너무 나이브하다.
많은 학자들이 2030년이 티핑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어도 이미 늦었다고 외친다.
2018년의 역대급 고온여름을 겪은 후부터, 매년 이맘때쯤의 극도의 더위가 시작되면
똑같은 이야기가 온라인 상에 반복되고는 한다. 12년 남았네, 10년 남았네, 7년 남았네...
2018년쯤, 나는 너무 절망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수업하는게 무슨 소용인가, 이 아이들이 과연 내 나이까지만이라도 무사히 살아남을까.
나는, 나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도 되는 걸까.
그리고 이 절망스러운 생각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여전히 내 내면 저 깊은 곳에 답 없는 질문으로 남아있다.
저런 기후위기에 관한 글의 댓글들은 대부분
'이미 늦었다.', '어차피 죽을꺼 지금 즐기자'로 흘러가곤 한다.
20년 30년 남았을때는 그럴리가 없다ㅋㅋㅋ였다면 지금은 다 망했다ㅋㅋㅋ이다.
참 극단적이다, 온라인 여론은 정말정말 한줌의 한줌도 되지 않음을 이제는 머리로 알지만
그런 글들을 보다보면 또 다시 불안이 엄습하고
최근에 나는 이게 '기후 우울증'의 증상에 가까움을 알게되었다.
이제 끝난것인가.
무슨수를 써도 우리는 다 죽게될 것인가.
다 부질없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인가.
나는 '중국이, 인도가, 미국이' 타령을 무척이나 경계한다.
의외로 중국은 현재 탄소중립과 환경에 공격적 투자를 하는 중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거하기 위해 미친듯이 돈을 퍼붓고 있다.
인도 역시 지난 IPCC 총회에서 석탄연료 사용 관련 강한 반발을 하기는 했지만,
결코 탄소중립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미국은 대통령이 교체되고 얼마되지 않아 다시 파리기후협약에 참여하였다.
현재 기후악당으로 꼽히는 세 나라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나몰라라 하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물론 현시점 최고의 기후악당임에는 틀림없다.)
유럽은 말해 뭐할것인가, 독일과 프랑스를 필두로 2030년에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아예 생산치 않겠다한다.
기차로 일정시간 이하로 도착 가능한 도시까지는 비행기 운항이 금지되었다.
도시 곳곳에 환경을 위한 그들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시점에 다다랐다.
건강도, 동물권도 아닌 환경을 위한 채식이 당연시 되고 있는 곳이 현재 유럽이다.
티핑포인트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나사의 어느 기후과학자는 애초에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이야기는 말이 안된다고도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목표는 기후위기 중단과 자연의 원상복귀가 아니다.
속도를 늦추는 것, 그렇게 티핑포인트를 미뤄가며 벌어놓은 시간에 과학기술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는 것.
그리고 그 과학기술의 발전은 의외로 놀랍게도 빨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신재생 에너지의 확산, 탄소포집기술의 발전, 그 외에 우리같은 범인들은 상상치도 못할 다양한 과학기술들.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이것이다.
기후위기를 멈추려고 한다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
하지만 생각을 전환한다면,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경외로운 자연을 따르며 다시 살아갈 길을 열 것이라는 것.
오존층 복구의 사례에서 그러하였고, 코로나로 잠시 살아났던 생태계가 말해주었다.
제주도 풍력발전기가 멈춰있어 불안했었다면,
과발전이 기기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멈춘것일 뿐,
이미 충분히 전력이 비축되어있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한다.
인류는 그저 가만히 놀고있지 않다.
더 속도를 내고 더 강하고 극단적으로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겠지만,
어느 누가 말했듯이 다이어트를 위해 절식을 해버리면 몸은 오히려 망가지지 않는가.
우리가 이 절망을 인지하는 순간, 멸종을 예상하는 순간 이는 더이상 멸종이 아닐 것이다.
무력해지지 말자, 나 하나라는 작은 존재에 의문을 품지 말자.
손놓고 살 정도로 X되지도 않았고, 그정도로 내가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다.
인구가 80억에 육박하는 21세기에, 왜 내가 그저 작은 하나인가.
내가, 당신이, 우리가 모여서 80억인데 왜 자꾸 늦었다고 나하나 바뀐다고 안 달라진다 하는가.
이번 대선을 돌아보라, 나 하나하나가 초근접차로 대통령을 결정하지 않았던가?
경기도지사 개표가 막판까지 접전이었던걸 생각해보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크다.
나는 오늘, 모든 창문을 다 열고 에어컨을 아예 틀지 않은 채 수업을 완료하였다.
에어컨 빵빵한 교실에서 갓 음악실로 온 3학년들이 처음엔 덥다 칭얼대었으나
잠시 안정을 찾고 바람을 느껴보라는 나의 말에 금방 에어컨타령이 멈추었다.
(물론 우리학교는 주변에 건물이 전혀 없고 뒷산이 푸릇하여 꽤 시원한 편이기는 하다.)
올 여름들어 나는, 나 혼자 교실에 있을때는 절대 에어컨을 틀지 않기를 실천중이고
집에서도 아직 한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는 교실 불을 켜지 않아 선생님들이 얘가 왜이렇게 컴컴하게 해 있냐고들 하시지만,
괜찮아요! 집에서 혼자 방에 있을 땐 밤에도 불 안켜는걸요!
테이크아웃을 위해 텀블러를 챙기는 것에서 생각을 전환하여, 텀블러가 없으면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주 밥을 잘 차려주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달음식은 한달에 한번도 잘 먹지 않고
가격과 기능보다는, 같은 화장품이면 유리병으로 된 것을 사려고 무진 애쓰는 중이다.
되도록 고기는 줄이려고 애쓰지만, 병력이 있는지라 그게 어려워 조금 속상하기는 하다.
(그래도 울산시교육청은 작년부터 매주 월요일은 고기없는 날로 지정하여 채식급식의 날이 운영되고 있다.
불고기 양념에 볶은 콩고기가 얼마나 맛이 있는지!)
진심으로 환경을 생각해서 고민과 고민 끝에 제작년 차를 하이브리드로 바꾸었고,
앞으로는 옷 소비를 어떻게 줄일 지 고민해볼 예정이다.
기후악당기업들에 어떻게 대항할지 고민해볼 예정이며,
몇년간 이어지다 끊었던 그린피스로의 기부금을 다시 어느 훌륭한 환경단체에 기부할지 고민해볼 것이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지금 조금 불편한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종종 내 과목이 음악이든 담임이든 상관없이, 아이들과 진지하게 환경이야기를 한다.
담임이었을때는 지구의 날을 꼬박꼬박 챙겨서 매년 아이들과 불끄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적어도 나를 거쳐간 아이들은, 단 한번, 단 한시간만이라도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매년 나를 거쳐가는 아이들이 지금까지 12년동안 적어도 천명, 이천명은 될 것이고
나는 이 아이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라는 작은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환경운동이라 생각한다.
혹시 나와 같이 종종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해지고 우울에 괴로운 누군가에게 권하고싶다.
기후위기에 대해 찾지말고, 기술과학 발전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찾아봐달라고.
내 하나라 생각하지 말고, 나부터 뭔가 해보자고.
우리가 모이면 인류는 매우 강하다고.
언젠가 인류는 종말하겠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그 종말을
언젠가 우리가 말했듯이 아아주 아주 먼 미래의 후대로 다시 미뤄보자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소 자극적으로 외쳐대는 소리에 매몰되지 말고,
내가 인식했고 우리가 인식했기에 이제 가만히 앉아 죽을날만 받아놓은것은 아니니
걱정말고 오늘 하루를 친환경적으로 살아가자고.
언제나처럼 인류는 또 길을 찾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