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아보아도 그게 팩트이다.
나는 강아지를 파양했다.
알지만, 그래도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고 싶어졌다.
속상함을 넘어 그간 쌓인 것이 폭발하여
나는 지금 너무나도 억울하다.
나는 살며 늘 집에 동물과 함께 살아오며, 대학 입학 전까지 수의사를 꿈꾸었고
대입에 성공하고도 자발적으로 재수를 할 만큼 그에 대해 진지하고 간절했다.
결국 교대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내가 얼마나 여린지를 너무도 잘 아시는 부모님의 만류와,
내가 어리고 약한 존재를 보살피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임을 일찍 알아보신
존경하는 은사님의 설득이었다.
그분들이 정말이지 옳았음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한번 느낀다.
수의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두 번 연속된 강아지와의 이별이었다.
두 번 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보장염이었을 것이며,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은 동물의 굳은 몸을 만지는 경험이 지금도 너무 강렬하게 온 몸에 새겨져있다.
그 후 데려온 강아지 은실이는 마지막 2년여의 신부전증 투병 끝에 강아지 나이 10살,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어느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당시 통학 중이던 나는, 학교를 가기 전 눈이 마주친 은실이를 보며 이게 마지막일거라 직감했고
결국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3년은 엄마와 울고 다닌 것 같다.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지만
결국 또 내가 신규발령을 받기 직전 겨울
엄마를 설득하고 두달여를 유기묘보호소, 카페등을 다니며 묘연을 찾고 공부하다
우연히 카페에서 근처 사는 분이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던 글을 보고
그 집에 방문해 눈이 마주친 우리 웅이와 인연이되어
만 13세인 지금까지도 친정에서 엄마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있다.
내가 데려온 책임감으로 아직도 고양이용품은 내가 사서 보내고 있으며,
웅이 발톱을 깎아주러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은 꼬박꼬박 친정으로 간다.
웅이가 다섯살때였던가,
온 몸에 두드러기에, 눈이 붓고 숨을 못쉬어 난리가 났던 시기가 있었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두말 않고 나를 상위병원으로 가라하였고,
태어나 처음 대학병원을 가본 나는
나에게 콜린성 두드러기, 천식, 그리고 돼지고기와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돼지고기는 끊어야하고, 천식때문에 운동도 과하게 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 교수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고양이를 안키우면 안되겠냐 하셨지만
이미 너무 오래 함께 산 고양이를 파양할순 없다 말씀드렸고
엄마는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사람인 니가 나가라고, 고양이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 말처럼 결혼을 하고 집에서 나와 우리집이 친정이되고부터 거짓말처럼 나의 알레르기 증상은 사라졌다.
약도 더이상 먹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몇년간 돼지고기를 일절 끊어,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사라진 모양인지
혹시나 하고 먹은 돼지고기에도 아무 반응이 없어
나는 아, 이제 큰 병 끝에 면역이 강해지나보다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나만의 공간에 살게된 결혼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신혼의 단꿈일지는 몰라도,
결혼하지 않고 살리라 맘먹었던 나와 남편은
처음으로 부모 안계신 집에 주체적 성인으로서 가정을 이룸이 얼마 안정적인지를 알게되며
참 행복하다 늘 이야기했었다.
나는 근데,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단 둘이 함께 꾸려나가는 집이 너무 행복했지만,
무언가 허전하고, 에너지가 남는것같고.
예전 우리 은사님의 말씀처럼, 나는 자꾸 뭔가 케어를 해야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지만 키워본 적이 없고,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알기에 신중해야한다던 남편과
몇달을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또 내가 고양이처럼 살다 중간에 알레르기가 생기거나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아기가 알레르기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하는지까지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며
결국 유기견을 포기하고
털빠짐이나 성격이 예상 가능한 견종을 공부했다.
누군가는 결국 품종견 데려오겠다는 핑계 잘 들었다 손가락질 할 지언정
강아지의 삶을 위해 유기견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이 나에겐 무책임이었고
공존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내 나름의 선택이었다.
공동주택에 살 것이니 헛짖음이 있으면 서로가 힘들고,
퇴근이 빠르고 방학도 있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몇시간 있을 혼자만의 시간에 분리불안도 적었으면 좋겠고,
또 너무 작게 개량돼 슬개골탈구를 달고 사는 소형 아이들도 자신이 없었고,
유전병이 있는 것도 견딜수 없을거라 생각하여
정말 너무 열심히도 모두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펫샵은 당연히 안되고, 가정견을 가장한 펫샵도 걸러내고
몇달을 고민하고 공부한 끝에
차로 네시간 거리 저 먼곳에서
일단 한번 방문해서 강아지와 인사해보자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었다.
얼마나 행복하던지.
생일이 있던 지난 한주가 얼마나 꿈만같던지.
결혼으로 생긴 새 가족들의 축하, 우리 가족들의 축하,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분과의 만남,
적응이 힘들던 새 직장 동료와의 새로운 인연, 친구들의 연이은 축하,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찾아간 집에서 거짓말처럼 인연이 되었다 생각한 강아지,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거짓말처럼 생일에 맞춰 내한한 가수의 공연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며
'아, 암에 이를 악물고 맞서길 잘했다. 살아있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그렇게 신나던 오프닝곡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다음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품에 안은 강아지를 보며
지금 우리 친정의 고양이 웅이처럼
'너 우리 만나길 잘했지?'하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말할 수 있게
내 모든걸 쏟아 잘해줄거라고 속삭였다.
차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골 전원주택에서
부모형제견과 5개월을 꽉 채워 살다 우리를 만난 강아지 '아리'는
살며 본 그 어떤 강아지보다도 천사였다.
오는 내내 보채지도, 소리도 한번 안내고 얌전히 안겨 집까지 오고,
오자마자 배변을 가렸다.
자기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 앉고, 소파도 침대도 눈만 빼꼼 올려다 볼줄 알지
안아달라 올려달라 보챌줄을 몰랐다.
연차를 내고 강아지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 남편은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다.
하루만에 앉아와 엎드려를 배웠다하고,
혼자서도 장난감을 앙앙 물며 잘 놀고 짖을줄을 모르더라며
내가 퇴근하는데 급히 연락이 와 둔감화 훈련을 위해 초인종을 누르고 오라하였다.
울타리 없이 행복하게 살아야하니 본인의 자리와 우리의 자리를 구분하게 하자며
늦은 밤 방문은 열어두되 잠도 안자고 들어오려하면 조용히 앞을 막아서는 훈련을 했고
강아지는 두번만에 의미를 안 듯 거실의 새로운 자기 침대로 가
새근새근 밤새 보챔없이 잘만 잤다.
가르친적도 없는 공 물어오기를 얼마나 잘하던지.
귀를 펄럭이며 공을 쫓아가는 강아지 얼굴에
아, 저게 강아지미소구나 단박에 알아볼만큼 신이 난 아리를 보며
내가 정말 잘해줄게, 우리 잘살아보자고 몇번을 말했다.
강아지 침 범벅이 된 장난감도 더럽지 않았다.
그리고 한시간이 채 되지 않아
눈이 뜰 수 없을만큼 부어오르고 눈물나고 가렵고 앞을 볼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정말이지 전형적인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쎄한 기분에 다음날 병가를 내고
출근한 남편 대신 엄마에게 운전을 부탁해 급히 다니던 대학병원을 방문했고
교수님은 4년만에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새로 해보자 하셨다.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없어진것 같다 말씀드려도 검사를 새로 권유하지는 않아셨던 분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어디에 친정갔다 웅이 털이 묻어왔나 생각했고,
요 며칠 강아지 털을 빗어주다 털에 자극을 받았을지도 모르니
앞으론 조심해야겠다.
강아지 알레르기라하면 털관리는 남편한테 하라 해야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결과는 기가막히게도 55가지 반응검사중에 고양이와 강아지에 매우 강력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흔히 선행되는 집진드기에도 반응이 0인데 정말 딱 고양이 강아지만.
털이 빠지지 않는 친구다 라고 하니, 침이란다.
강아지 침에 반응을 하는것 같다 하신다.
그럴줄 몰랐다. 정말 몰랐다.
나를 너무도 잘 아는 엄마가 옆에서, 고양이때처럼 약 먹으면서 키우는건 안되냐시니
4년만에 처음으로 화를 내신다.
불끄는데 옆에서 기름붓는 격이라신다.
고양이도 키우던걸 못보낸다셔서 못말렸는데, 이틀된 강아지면 포기하셔야한다고.
어머님이 데려가서 키우시면 안되냐고 큰소리를 내셨다.
이러다간 엄마가 울 것같아 알겠습니다,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급하게 친정으로 모든 짐을 싸서 아리를 데려다주는 내내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급하게 처가로 달려오던 남편의 눈도 빨갰다.
엄마는 그래도 엄마가 강아지를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자주 보러 오라고 나를 다독였는데.
너무 강아지에 몰입되어 우리 늙은 고양이는 아무도 생각을 못한게 화근이었다.
13살을 우리집에서만 산 영역동물 고양이는 새로운 동물을 받아들일수가 없었고,
사냥개 혈통인 강아지는 자신보다 작은데 심지어 공격을 가하는 동물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분명 강아지가 고양이를 공격하게 될 것이 너무 자명했고,
찾아보니 성묘와 어린 강아지의 합사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글 밖에 없다.
결국 엄마아빠가 한 마리씩 붙어 계속 한마리와 문 닫고 방에 함께 있을때
다른 한마리를 자유롭게 두는것을 두시간 간격으로 하시는 중이라셨다.
나는 지금 눈물이 나는걸 억지로 막아내며 여기저기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있냐고 묻고있다.
아직 중성화 전이라 내가 걸러내기도 힘든 작정한 업자라도 달려들까 싶어
어디 입양카페에도 글을 못 올리겠고,
억지로 개를 떠맡겠다는 집에도 보낼수가 없다.
하지만 내 주변엔 모두 좋은사람밖에 없어, 그 누구도 강아지를 쉽게 덥썩 맡겠다 하지 않는다.
강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너무너무 신나게 친정에 머물고 있다 한다.
엄마가 던져주는 공도 물고오고, 밥도 잘먹고 똥오줌도 잘 싸지만,
우연히라도 고양이 방석이나 집 근처에서 냄새를 맡으면 사납게 짖기는 한다고 한다.
나는 강아지와의 이틀간의 사진과 흔적을 모두 지우고
열심히 여기저기 강아지를 믿고 보낼데가 없는지 묻고있는 중이다.
직장생활은 껍데기만 와 앉아있는 꼴이다.
나는 무교다.
신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내 몸을 이렇게 만들거면 나에게 욕심을 주지 않으셨어야지.
속상하다 정도의 감정이 아니라,
약오르고 화나고 억울하다.
이제 정말 좋아하는 일하고 승진을 준비해보려니 날 암에 걸리게 했고
좋은 사람과 아기를 낳아보고 싶게 해놓고 지금은 안되고 나중엔 그럴지도 하는 희망고문을 주었으며,
강아지 고양이를 누구보다 좋아하게 만들어놓고 강아지 고양이 알레르기를 선사했다.
술마시고 담배피며 사람 죽이고 막사는 것들은 놔두고
열심히 성실하게 산 나에게 암을 주고,
학대하고 죽이는 것들은 임신 막 시켜놓고
나는 아기를 낳으려면 암의 재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엄청난 도박을 하게 만들며,
강아지 고양이 예쁘다고 펫샵에서 사서 좀 키우다 질리고 귀찮으면 유기하고 파양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두고 나같은 사람에게 알레르기를 잔뜩 주었다.
그것도 약 올리듯, 하고 많은 알레르기중에 딱 두개만.
그렇게 강아지 키우는걸 두려워했는데, 나를 이기지 못해 데려온 아리와 이틀만에 너무 정이 들어버려
우는 날 달래지도 못하고 등돌려 누워 소리도 못내고 눈물만 흘리는 남편에게도,
딸이 벌린 일에 또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부모님께도,
13년을 사랑받는 외동으로 살다 너무 스트레스 받는 중인 우리 고양이 웅이에게도,
아무것도 모르고 날 따라왔다가 여기저기 천덕꾸러기가 될까 너무 맘아픈 강아지 아리에게도,
내 욕심에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에 죄스럽기 그지 없다가도...
이럴줄 알았음 나도 안데려왔지.
털 알레르기 생길까 싶어 욕먹을걸 알고도 내가 감당 가능한 아이를 찾느라 애썼고,
만에하나 아기가 생겨도 파양않고 함께 살 방법까지 강구해서
정말 고심의 고심을 하며 강아지를 데려왔는데.
털이 아니라 침에 대한 알레르기입니다, 라니.
그것도 매우 반응성 강하다고 두번이나 강조안하셨어도 됐는데,
유기견센터, 펫샵, 강아지운동장, 심지어 친구의 커다란 진돗개가 저녁내내 우리집에서 놀며
온 털을 다 묻히고 가서 3일을 청소때마다 개털을 치우면서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다행이다 고양이 알레르기는 있어도 강아지가 없어서.
하고 얼마나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는데.
내가 이럴줄 알았음 데려왔겠냐구,
내가 아무생각없이 예뻐서 덜컥 데려오는 그런 사람이 된거냐구 이제.
나 지금 강아지 파양하네.
그렇게 내가 손가락질하고 욕하던 사람이 되었네.
나도 억울해, 나도 억울하다고.
어제는 결국 엄마에게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머리론 그러면 안되는걸 알면서 울며불며 화를 냈다.
나를 왜 이렇게 낳았냐고,
왜 나를 건강하지도 않은데다가 좋아하는것마다 알레르기 생기게 낳았냐고.
엄마때문에 내가 낳을 아기도 이럴거라고 막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남편이 그러지 말라 말리는데도,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엄마가 울며불며 미안, 엄마가 미안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속상한 일이 생기는걸까.
나는 보내야할 강아지에 대한 미안함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늘 조바심내야하는 나의 위태로운 건강과
하고픈 일마다 나의 건강으로 인해 다 좌절되는 이 신세에 화가 난것이다.
게임처럼 리셋버튼이 있다면 리셋을 누르고 싶지만,
리셋한다고 해서 바뀌는건 없는 인생이다.
오늘 무려 두명의 동생들에게 들은 말처럼
이건 교통사고처럼 내가 막을수 있는게 아니니까.
병은, 또 건강은 참 불공평해서 공평하다.
세계 최고의 재벌도 암으로 죽는가 하면, 천하의 몹쓸놈은 무병장수를 하기도 한다.
열심히 산 나는 아프고, 막 산 어느 당신은 너무나 건강하다.
하다못해 체질이 똑같은 나와 엄마, 내동생 중 강아지 고양이 알레르기는 나뿐이다.
외가, 친가를 합쳐 조부모님들까지 다 찾아도 암은 나뿐이다. 그것도 30대 중반의 나.
누가누가 좋아하는 랜덤게임처럼, 나의 이 괴로움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돌려돌려 뽑기판의 장난이다.
우는소리같겠고, 나보다 더 불행한사람도 많다는걸 안다.
하지만 나는 아프리카의 결식아동 사진을 전시하며 너희는 행복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불행에 비교우위로 내가 더 나음을 만족하는 것은 왠지 천박하고,
남의 먼지도 나의 우주인 법이다.
나는 억울하고, 약오르고, 괴롭고, 슬프다.
나는 강아지를 파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