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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Jun 28. 2023

너를 보며 면직을 생각했다.

손발이 묶인 교육자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

그래,

전부 결국은 내가 정한 규칙임을 안다.


너희를 위한다는 착각이었으리라,

내가 편하려고 만들어낸 규칙이었겠지.


만 14세미만은 가입하지 말라는 경고창처럼

선생님의 목소리도 확인을 누르면 사라지고 마는 의미없는 경고창같은거였겠지.

너희 나이때는 그럴수 있다, 그걸 알아야 너희를 가르칠수 있단다.

그래, 니가 죽을죄를 진건 아니라는걸 알고있다.


그런데 나의 어린 친구야,

나는 오늘 너를 훈육해보리라 단 둘이 마주앉아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몇번이고 다시 쓴 물처럼 한단어 한단어를 억지로 삼켜야만 했단다.

무언가 말을 하려치면, '혹시 아동학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무섭게 덮쳐왔거든.


'이렇게 말하면 정서학대로 걸리려나?'

'혹시 이런 말이 언어폭력인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이런말 하면 이렇게 민원이 들어오려나?'


내가 꺼내지못하고 삼켜 소화도 시키지 못하고 명치에 얹힌 말들이 뭐였냐면,

'선생님과의 약속이 그렇게 우스웠니?'

'니가 규칙을 어기는데 선생님이 그냥 넘어가버리면, 열심히 규칙을 지키는 다른 친구들은 뭐가 되니?'

'나는 너를 믿었는데,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았단다.'

정도였단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 큰소리도 낼 수 없고, 너를 비난하는 단어를 쓸 수도 없지. 당연한거야.


더군다나 나는 이런 말들을, 발견한 그 즉시 그 자리에서 하지 못하고

너를 모시고 아무도 보지 않는 조용한 장소를 물색하느라 꽤 긴 시간을 허비했단다.

혹시나 즉시 교육을 하다 다른친구들이 보는 공개된 장소임을 인지하지 못했다가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학생을 야단쳐 모멸감을 준 죄로 아동학대자가 될까 두려움이 앞섰거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보며 너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똥 눌 자리를 찾아서 킁킁대는 강아지처럼 보이지는 않았을까, 그랬던들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더구나 요즘은.


결국 나는 내 안의 칼든 '자기검열'씨와 치열하게 대치끝에

긴 한숨과 함께 

"너 하고 싶은대로 하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주지만 마."

하고 두 문장으로 훈육을 마무리해버렸단다, 기억하니?

내가 이걸 훈육이라고 정의할수는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와중에 나의 한숨이 너의 심기를 거슬러, 정서적 학대가 된건 아닐까를 또 고민하는 내 스스로가 너무 처참하더라.


나는 지금 그 다음 문단을 벌써 세번째 쓰다가 지웠단다.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를 역설하려다,

내가 얼마나 청렴한 교사였는지를 구구절절 쓰려다,

내가 그 어떠한 교사였든, 숨쉬는것 조차 학대일까 걱정하는 현실은 분명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구차하게 참교사 자소서 쓰기마저 싫어져버렸다.


내가 바라는건 체벌권 회복도, 다시(?) 갑이 되는 것도 아니란다.

나도 선생님들에게 맞고 자란 세대이고, 부모가 촌지드린 친구에게 밀려 전교임원을 못하기도 해보고

그분들의 증오가 무엇에서 비롯됐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단다. 내가 그분들이잖니.

그런데, 있잖아 친구야.

선생님은 선생님의 선생님처럼 너희를 때리지도, 인격모독하지도, 촌지받지도 않았단다.

그러면 안된다고 지겹도록 교육받았고, 그러지 않고 있단다.

선생님은, 그시절 그 선생님이 아니야.


아동학대법은 정말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위한 법이지,

내 기분 나빠죄로 선생님들을 괴롭히라고 있는 법이 아니잖니.

'고소당하는거보단 나에게 무릎꿇는게 낫지 않겠냐'는 어느 고소인 학부모의 논리만 봐도,

이 분은 고소 그 자체로도 교사를 괴롭힐 수 있고 압박이 될 수 있음을 아는 분이고,

이 교사가 진짜 당신 자녀에게 아동학대를 했음을 밝히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 게 느껴지지 않니.

아는거야, 사실 그건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교과서에 제시된 활동으로 소리내지 않고 까치발로 복도를 걸어보자하니

1학년을 데리고 까치발 걷기를 잠시 했던 선생님이 체벌로 아동학대 고소를 당하는 세상에

우리가 뭘 하면 되는걸까.


뭘 안하면 되는것 같다는 결론이 난다, 자꾸만.


퇴직하신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원래 감사도 일 하는 놈이 걸리는법이야,

일 안하고 잔머리굴리는 놈들은 한게 없어서 감사도 안걸려."하시던 말씀처럼

뭘 열심히 하려하면 아동학대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까봐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수업시간에 수업만 하고 시간을 떼우면 아동학대에 걸리지 않겠지, 생각하게 된다.

모둠활동이고 뭐고 잘못하다간 내 열정이 언제 어떻게 아동학대로 변신해 나를 옥죄어올지 모르니

옛날 구시대적 강의식 수업만 하다가 집으로 보내면 '방임'이라는 아동학대까지 완벽히 피할 수 있으려나.

상담 중에 내뱉은 말이 정서학대로,

수업 활동의 일환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 체벌로 탈바꿈하는 현실에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가 되면 되려나.


결국 나는 너를 보며,

면직을 생각했다.

13년만에 처음으로 사직서를 구상해보았다.



*본문에 서술된 아동학대의 사례는 실제 사례이며, 2023.3.7. MBC PD수첩 방영분(https://youtu.be/hjn2e0vCM6Q)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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