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단추, 설탕
사람들은 몇 세기 동안이나 열쇠로 자기 집 문을 열고,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빗고, 식탁에 앉고, 아이들을 껴안고, 앓기도 하고,
하품하고, 떨어진 단추를 꿰매 달고, 책을 읽고, 앞일을 생각해 왔어요.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시간의 네 방향’
삼월이 지나간다. 난 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삼월 말쯤 느닷없이 천치바보처럼 쏟아지는 눈을 좋아한다. 때를 잘못 알고 투덜대며 내리는 우박을 기특해 한다.
벌써 공부 모임을 한 지 네 달이 지난다. 네 달 동안의 집성목 테이블. 네 달의 나무의자.
정치연구소 연구원인 한 사람은 미래의 광장에선 어떤 사유가 일어나야 하는지 성찰하는 세계여행을 떠난다. 네 달이 될 지 4년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심리학 전공인 또 한 사람은 두문불출 강아지 단추와 칩거하며 자기 연단 중이다. 그럴 때가 된 것 같다. 네 달을 같이 지냈으니 사 일 정도는 뚝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아라. 시간의 서로 다른 네 방향.
무작정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눈빛 꼭맞춤이 공부한다. 잘못 알거나 모르고 있던 걸 공유한다. 필사도 논쟁도 한다. 네 명의 친구들이 모여 같이 앓고 하품도 한다. 생각의 설거지도 떨어진 단추 꿰매기도 한다.
강의자 중심의 모임은 오리 등에 물방울 미끄러지기다. 헛수고. 헛물켜기. 습득도 안 되고 실천으로 옮아가기 어렵다.
북유럽에선 네 명이 모여 목공을 하든 정원 가꾸기를 하든 공구 제작을 하든 모여 단순한 수다를 떨어도 그것이 공동체라고 인정되기만 하면 책도 지원하고 전문가 지원도 해준다고 한다. 사각의 링. 네 명의 친구. 시간의 네 방향.
백 년 전 사람들이 내다보던 같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겠지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시간의 네 방향’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며 온다하고 안 오는 가짜뉴스 같은 사람들아. 루머 같은 친구들아. 어디든 모여 치열하게 책 읽고 같이 공부하며 눈물도 흘려보아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폭탄 폭죽 놀이 남의 일 아니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포도주스나 석류주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
겨울인 줄 착각하고 내리는 우박에 냉해가 온 사과나 복숭아들. 그 겉은 볼품없이 울퉁불퉁하다. 그러나 낙과하지 않으려고 가지에 악착같이 매달려 당도를 더 높인다. 그렇게 봄에 오는 폭설과 우박은 우리를 단련한다.
정신의 우박 같이 맞으며 네 명이 설탕 사각함처럼 꼭맞춤이 공부해 보자. 친구가 옆에서 그런다. 친구가 그런 제안을 하면 기꺼이 응하라. 일단 수다부터 나누며 시작하라. 사각의 링. 붉은 글로브. 하품도 하고 앓기도 하는 시간의 네 방향.
악어쇼의 세상. 친구들아, 같이 공부하고 싶지 않니. 시와 쇼, 쇼아shoah. 우리 안의 홀로코스트, 가습기 피해 아기 옥시 사태와 미래치료권. 세월호, 최근의 미투metoo. 기후변화, 전쟁과 재해. 혹은 자기도 모르게 내 안에서 벌어지는 자기 학살에 대한 것. 머리에 창문을 뚫고 바깥을 내다보는 것. 백 년을 또 백 년을 이어온 것.
우리 안의 식민지. 내 남편인 사기꾼의 세상. 그 안에 다양하게 펄럭이는 비천한 얼굴들. 평범한 악의 얼굴을 가진 우리 안의 교활하고 영리한 존재. 그 존재의 누더기들. 양다리도 아닌 애매모호 왕국 회색지대. 그곳에서 자기를 자기가 살해하고 있는 걸 모르는 채 침묵하고 있지 않은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동화 '시간의 네 방향'에서 폴란드 역사를 살펴보고, 올가 토카르추크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꼼꼼히 읽다보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좀더 깊이 사유하게 되지 않을까. 아우슈비츠 생존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의 책과 함께. 왜 악기 연주자인 파스칼 키냐르가 음악을 혐오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세계가 사랑하는 동화작가 이보나와 시인 비스와바, 소설가 올가 때문에 폴란드가 언젠가 꼬옥 가보고 싶어졌다. 홀로코스트와 쇼아.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평화. 수도 바르샤바가 아닌 중세도시에 가 시계탑을 꼭 보고 철걱대는 시침의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그 시간이 깨우는 심장의 박동 소릴 듣고 싶어졌다.
파울 첼란이 '치모(恥毛)로 만든 북을 울리고 곪은 발가락으로 모래에다 너의 눈썹을 그렸던’ 그런 수용소 라거가 있던 그곳에서 그 혼란과 무질서와 공포, 혐오 속에서도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동화와 시, 소설이 태어났는지.
시계탑이 지켜보던 500년의 시간. 동쪽 부엌과 남쪽의 공방. 서쪽 아이들 방과 북쪽 거실. 1600년 4월 어느 날, 아침 9시 곧 다가올 부활절 케이크에 넣을 달걀 흰자 거품을 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되는 500년의 시간을 시계탑은 지켜보고 있다.
1600년 4월 어느 날, 아침 9시에 시작한 시간은 100년을 단위로 낮 1시, 저녁 5시, 8시를 경유하여 2000년 12월 31일, 자정의 시간으로 귀환한다.
밀레니엄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나고 다시 12년이 지난다. 그동안 강물의 범람, 전쟁의 참화. 설탕이 금괴보다 귀해 은함에 담아 열쇠로 잠궈놓고 귀한 날에서나 한 알씩 꺼내먹던 시간. 열쇠가 사라져 설탕을 꺼내먹을 수 없던 시간.
그 가운데에서도 구두 장인은 구두를 만들고 모자 장인은 모자를 만든다. 생강빵을 굽고 미래의 결혼식은 이뤄진다. 숲에서 따온 버섯으로 버섯 수프를 끓이고 네 살 아이는 미래의 사진가가 된다. 그림책 작가는 아이의 헌 레이스옷과 커튼과 오래된 벽지를 활용해 ‘시간의 네 방향’이라는 동화책을 펴낸다.
폴란드에선 6월 12일, 태양이 가장 긴 하지가 성 얀 축일이라 한다. 이날 밤에 상류에서 여성이 띄운 꽃관을 하류의 남성이 받으면 사랑이 맺어진다고 한다.
매혹적이다. 그 성 얀 축일에 맞춰 폴란드에 가고 싶다. 광장에 시계탑이 철걱거리고 강물이 휘돌아가는 중세의 도시에.
책은 이렇게 끝난다. 북쪽 거실, 호텔의 거실이다. 외국인 두 명이 호텔 앞에서 아주 오래된 은색 열쇠를 줍는다. 200년 전 설탕을 담은 은함의 열쇠.
이렇게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또 10년이 지나고 다시 12년. 2022년 봄. 다시 열쇠가 사라져 설탕을 꺼내먹을 수 없던 시간이 여기에도 도래한다. 상류에서 꽃관배를 띄웠으나, 하류에는 도착하지 않는 시간이 온다. 코로나와 전쟁과 기후변화의 거침없는 격랑이 온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으로 달 예쁜 생강빵을 구울 수 있어요.
몇 시간 전 천둥이 칠 때, 아주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생강빵 반죽에 들어갈 후주와 정향,생강과 계피를 절굿공이로 잘게 부수었어요.
아이들은 천둥소리가 무서워서 그보다 더 큰 소리가 나도록 절구질을 했어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시간의 네 방향’
이렇게 천둥 소리는 울린다. 울리고 있다. 있다. 있다. 전쟁은 어린이 병원을 파괴하고 임산부들은 지하 참호에서 탯줄을 끊는다. 할머니들이 결사항전의 각오로 총을 든다. 밀밭이 훼손되고 한 아주머니는 전사자의 시체밭에서 자랄 해바라기 씨앗을 어린 병사의 주머니에 넣어준다.
이렇게 천둥은 울리고 있다. 아마존의 수림은 황폐해지고 빙하 장례식이 거행된다. 통가는 화산재에 묻히고 해변에선 사랑의 구덩이를 파고 남긴 콘돔을 삼키고 바다생물이 떼죽음한다. 버려진 마스크는 홍합과 바다달팽이를 플랑크톤을 죽인다.
쾅쾅 천둥이 터지고 있다. 울진 금강송이 산불에 사라질 위기에 빠지고 할머니들이 평생 살던 집과 기르던 소를 꿀벌들을 잃는다. 더 이상 해변에선 녹색말이 자랄 수 없는 백화현상이 일어난다.
열쇠를 잃어버린 은함 속 설탕이 오랜 시간 굳어져 경화되는 시간의 석고화. 시간의 백화현상. 느닷없는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타인의 말을 못 듣고 내 안의 목소리도 경청할 수 없는 기이한 시간이 온다.
이렇게 천둥이이이이 울린다. 산티아고를 흉내낸 ‘소확행’ 올레길은 더 이상 올레가 되지 못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유랑은 나무의 휴식과 잠자는 시간을 약탈한다. 발소리와 사람들 목소리로 불면증을 앓는 나무, 새, 동물들. 그 야생의 시간들.
어느덧 두려운 사월이 오고 있다. 16일이 오고 있있있다. 그 아침 8시의 시간이 오고 있다.있다. 있다. 천천히 망각되어 가고 있는 세월호. 그 망각의 세월교 아래 지금도 보이지 않게 출렁이고 있을 격랑들.
백 년 전 사람들이 내다보던 같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겠지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시간의 네 방향’
그때의 격랑과 참사를 기억하고 있을 그 맹골수 아래 감성돔과 조개와 산호들. 우리들의 두개골과 심장과 쓸개를 두드리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와 우리의 시간이 오고 있다. 설탕을 담은 은함의 열쇠를 잃어버린 시간.
최소 네 명이라도 모이면. 그 진부한 소확행 말고 같은 ‘창문 뚫기’를 하고 싶다. 진실하고 내면적인 열쇠 찾기.
네 명이라도 만나면 사각의 링을 만들고 정열의 피가 물들인 빨간 글로브를 껴보아라. 타인이 아닌 ‘내 안의 각별한 사람’과 세공이 멋진 은함 속에서 보이지 않게 굳어가고 있을 각설탕과 연애 좀 해 보아라.
백년이 지나도 창문 밖으로 사람들은 지나간다. 시계탑이 보이는 광장으로 사람들은 오간다. 우르르쾅 천둥 소리가 깨끗한 귓밥을 흘리며 심장과 고막을 두드린다.
그런 삼월에는 동사무소 사랑의 냉장고에 집에서 남는 음식을 채우고 아파트에 과일나무도 심어 이웃과 나누고 싶다. 경비가 반으로 줄어 지금은 빈 붉은 벽돌 경비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에밀리 디킨슨이 책갈피로 사용한 크로커스도 심고 우리의 야생화 아기각시풀도 그 옆에 나란히 심고 싶다. 그렇게 아파트 마당을 가꾸다 누군가 잃어버린 열쇠도 찾고 소금이 들었던 허름한 항아리 조각도 발견하고 싶다.
아파트 안에서 몰래 피우다 창문 밖으로 던진 담배꽁초들이 눈 녹은 화단에서 무더기로 갸웃대며 드러나는 것 대신, 누군가 썼던 단추 같은 걸 찾아내고 싶다.
그렇게 울리는 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고 싶다.
그러자, 친구들아. 비천하지만 늠름하게. 미약하지만 드높게.
*시간의 네 방향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저/이지원 역 |사계절|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시간의 네 방향#전쟁#기후#공부#이문숙시인#첫시집#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고 싶다#최정례시인#시집해설#창비#우크라이나#코로나#전쟁#학살#폴란드#도화
#폴란드초현실주의화가야첵예르카(1952~ )#애플캘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