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총새처럼
우리는 언어라는 '정해지지 않는 집'에서 살고 있다.- 카프카, 에코랄리아스Echolalias에서.
찻집 커반이 카라반caravan 같다. 사하라를 건너는 혹등낙타들. 등에는 두 개의 봉우리, 현실과 비현실을 지고 가끔 낯선 이의 호출을 받는다.
오늘은 친구 숙희가 전화를 걸어 아주 조그맣게 고백할 게 있다 말한다. '나 개명했어. 이제부터 서현이야.'
서현 싫고 그냥 숙희 좋다. 동그마한 콧볼이 하얀 얼굴 속에서 따뜻한 굴뚝처럼 발름대는 숙희. 숙희라고 부를 때 혈관을 빠르게 돌며 생겨나는 '조혈모세포.’ 그 지극함과 나직함.
그 얼굴은 개명이 불가하다. 언어라는 정해지지 않는 집. 고정되지 않고 한없이 미끄러지는 집. 다정하고 범속한 그 안에 살림살이 가득한 숙희의 집.
언어들이 말총새처럼 귀에서 딱딱대며 지저귄다. 대놓고 미관광장 이름 멋없다. 거리낌없이 문화초등학교 문화 싫다. 자칭 비버리힐즈 초췌하다. 해븐리 요양병원 싫다. 저세상 가기 전 들르는 간이역 같다. 언어에 ‘소스라침' 없다.
일산을 가차없이 영어로 바꾼 원마운트 워터파크.’ 춤추는 탁발승’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물놀이 기구가 멈춰있다.
얼어붙은 호수공원, 망치를 들고 얼음을 깨는 아이들. 땀을 뻘뻘 흘리며 깨고 싶은 독재자의 언어들. 그 망치의 쾅쾅.
호수공원이라는 이름 가진 호수공원. 전국에 전세계에 널려있는 레이크파크. 몇천년 전 가와지 볍씨가 출토됐다는 전통정원 옆 손바닥만한 논을 들여다 보다 깨닫는다. 갑자기 호수의 얼음벌판이 황금벌이 되어 출렁인다.
이곳 수천년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호수푸른볍씨공원'?, 혹은 '황금벼호수공원'? 이라고 하면 왜 안 되는 걸까? 개명된 서현이 다시 숙희로 개명하여 돌아오면 어떨까.
조선시대 닥종이 생산하던 저동 고등학교. 밤나무 많던 밤가시 마을 이름 속속들이 좋다. 알미공원과 섬말다리 새록새록하다. 이름 속에 많은 의미와 상상들이 출토된다. 잊었던 흙들과 볍씨와 언어의 발아.
음식점 입구에 새파란 대파가 애스터리스크asterisk 같다. 이상하게 별표가 붙으면 자꾸 더 들여다보게 된다. 별표와 별표의 분만. *, **, *****
한겨울을 이기고 더 새파래진 대파. 대파의 파안대소. ‘깰 파’라는 말은 두렵지만, 굳었던 얼굴을 깨트리며 대파가 웃는 듯한 착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언어의 개방성.
서현 아닌 숙희야 잘 지내지. 지난 번 내가 집들이 선물로 손발에 흙 직접 묻히며 심어 갖다준 ‘아스타’ 말이지.
일산에서 녹사평으로 다시 서이로 세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낑낑대며 배달한 거 말야. 무슨 국화가 살균기의 보랏빛 광을 쏘는 것 같다고 그땐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별표와 별표의 선험성. 네가 그곳에서 잘 안착하길 바라는 나의 몽매.
나는 일년초보다 다년초가 더 좋아. 오래두고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의 다년생 식물이 그 고유성을 잃지 않으며 내 입 안에서 자라는 게 좋아.
*에코랄리아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