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펜촉 그리고 삽날
주방 창턱에 놓아둔 감자가 꽃을 피웠어요. 감자는 쪼글하였지만, 꽃보다 그 감자의 쪼그라지고 마른 몸에서 햇감자를 조심스레 캐내던 삽날의 노동을 보았어요. 자갈돌에 부딪치는 아버지와 아버지들의 삽날 소리를 들었어요.
텃밭을 일구는 노동의 엉덩이가
감자 이랑 사이를 파느라 나지막히 숙였다가
- 세이머스 히니 ‘땅 파기’
명동 프린스 호텔은 소설가들이 투숙객으로 묵으며 글을 쓸 수 있는 객실을 제공합니다. 창 밖으론 남산 타워가 보이고요. 도시의 야경이 비행기를 타고 지상을 내려볼 때처럼 화려하고요.
그곳에서 머물렀던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 "호텔 프린스"가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호텔 프린스에 시인의 방은 없습니다.
그러니 시인들은 이곳 일산 호수공원에 가득한 얼음을 캐서 그 얼음벽돌로 지은 얼음호텔에 투숙하기로 해요. 호수공원의 얼음을 벽돌로 쌓아 어떤 기계의 도움없이 자귀와 망치, 불꽃만을 사용하여 지은 호텔이죠.
시인들의 얼음처럼 조밀한 고독. 검지와 엄지 사이 펜촉은 얼음을 캐는 날카롭고 강인한 도구가 됩니다. 그 얼음호텔에는 시인이 투숙객이 됩니다.
날이 풀리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덧없음'의 극지이며 조차지인 얼음호텔이긴 하지만, 그곳에는 호텔 프린스를 능가하는 시인의 방이 있습니다.
손에 든 감자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참으로, 아버지는 삽을 잘 다루셨다.
- 세이머스 히니 ‘땅 파기’
일산이라는 신도시는 한강이 범람하여 그곳에 있던 논들이 붉은 뻘흙으로 덮히면서 세워진 도시입니다.
지금도 강선공원에는 1990.9.9일 '홍수 흔적 기념비'에 '여기까지 물이 들어온 자리임'이라는 아픈 글귀가 돌에 새겨져 있죠.
홍수 흔적 기념비라니. 참 이상한 기념비입니다. 홍수가 마치 위인이나 유공자인 것 같아 볼 때마다 씁쓸해요. 벌판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든 홍수의 위력을 기념하는 이 기념비를 지날 때마다 기억은 다시 삽날이 됩니다.
장마 기간도 아닌 가을 홍수가 나면서 이 벌판은 신도시로 개발되었습니다. 그때가 확연히 기억나요. 당시에는 주택과 농경지가 침수되어 끝없는 갯벌 같았어요. 붉고 확연한 갯벌. 늪. 빠짐. 빠져나오지 못함.
이곳에 있던 논과 감자밭과 밤나무 숲. 아버지의 아버지들. 아버지의 깨끗한 연장들. 그 연장들 중엔 꽃사자삽이란 이름도 있었어요. 사자처럼 부드럽게 으르렁대며 흙에 박히는 삽들. 햇감자를 다치지 않게 파내거나 이랑을 단정히 내던 조심스럽고 신중한 삽들.
백석, 장항, 주엽, 마두, 오마 같은 이름을 가진 전형적인 농촌 일산. 개발을 반대하던 농민들이 끝까지 저항했지만 토지를 강제수용 당하고 고향을 뺏기고 결국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남은 그곳의 아랫말산.
저는 수색으로 출근하던 때였는데, 이 홍수로 다리가 끊겨 결근을 해야했습니다. 한강 제방이 무너져 폐허가 된 이곳. 그때의 잘 다듬어진 감자밭. 감자를 캘 때 햇감자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삽날을 박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경건함. 삽날의 조심성과 집중.
제 고향은 금촌이지만 매일 경의선을 타고 통근하면서 일산의 벌판과 옛집들과 윗말 아랫말 산들이 속절없이 뭉개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무너졌던 게 기억나요. 아니 보지 않으려 상행선에서 하행선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눈을 감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탈곡기와 곡괭이와 헛간들. 그때의 정미소와 파란 모들. 물이 들어찬 흙을 부드럽게 쓸어가던 고무래 같은 농기구들. 그때의 아버지와 아버지들.
나는 그 일산에선 결단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지만, 그런데 제가 어느덧 일산 신도시 아파트에 살며 가끔 호수공원에 가 손바닥만한 '가와지 볍씨 출토지'나 들여다 보고 있는 거예요.
이름으로만 남은 궁궐공원과 이물재 공원, 오마공원, 정발산을 걷고 있는 겁니다. 밤가시 초가집의 봉당이나 그집에 구부러진 밤나무로 만든 기둥이나 들여다보며 살고 있어요.
이런 신도시에 홍수의 흔적처럼 인공호수가 파이고요. 호수공원은 이렇게 만들어지고요. 참 아름답구나. 사람들은 지금의 이곳만 보며 수양벚나무 아래 양산을 쓰거나 금지된 텐트를 폅니다. 황금잉어들에게 생태계가 파괴되니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에도 아랑곳없이 뻥과자를 부숴 줍니다. 훼손하면 안된다는 접근금지, ‘몽상’이라는 제목의 엎드리고 웅크린 산양 조각물에 올라가 미끄럼을 탑니다. 텃밭정원에서 아기수박을 몰래 따가고 한창 싹이 올라오고 있는 튤립을 배드민턴을 치며 밟습니다.
이 아름다운 호수공원의 이면에는 엄청난 자연재해와 토착민들의 희생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는데요.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황금논들과 별의 수로에 늘 눈을 맞추던 쫓겨난 농민들이 있었다는 건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어느덧 뿌연 황사가 선명했던 기억을 덮고요.
저는 매일마다 새벽 기차 타고 서울 갈 때, 그 넓디넓은 새벽 벌판에 혼자 묵묵히 논둑을 다듬고 밭이랑을 고르는 농부를 보았구요. 그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농부야말로 펜촉 대신 '삽을 든 시인'이라고 생각했었더랬어요.
세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의 시 ‘땅 파기digging’'에서 아버지가 햇감자를 캐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 아래 화력 좋은 토탄turf을 캐던 삽spade. 내 엄지와 손가락 사이 총gun처럼 놓인 땅달막하고 몽당한 펜squat pen. 그 펜촉의 사각사각 노동. 그 작은 삽날로 캐내야 할 역사와 흔적을 이 얼어붙은 호수공원 그 얼음을 캐서 건축한 얼음호텔에서 떠올려봅니다.
이 얼음호텔 주방 창턱에서 감자 하나가 꽃을 피우고 있어요. 감자 하나가 인색한 빛들을 끌어모아 실뿌리들을 뻗더니요.
뭉툭하게 잘라놓은
실뿌리들이 내 머릿속에서 깨어난다
- 세이머스 히니 ‘땅 파기’
얼어붙은 호수를 보며 더 이상 벼논도 감자밭도 아닌 이곳을 덮은 이 '무용한 얼음'을 어디에 쓸까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 이 얼음벽돌을 캐서 얼음호텔, 얼음모텔, 얼음여인숙을 지어보자. 그곳에 시인의 집필실을 만들어 보자. 시인의 방을 만들고 기억에서 실뿌리로 뻗어나오는 그때의 홍수를 얼음 속에 보존하자. 제방의 구멍을 창문으로 내자.
이 얼음호텔에 지배인이 되어 이곳에 투숙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아주 적요한 아랫말 윗말이었다는 것을 알리자.
겨울 호수에 꽝꽝 얼어붙은 얼음을 보면 느닷없이 벽돌공이 됩니다. 이 얼음호텔에 하룻밤 숙박하며 권총처럼 손가락 사이 딱 맞춤하게 편안한snug 펜을 들고 사각사각 씁니다.
이 신도시 아래에 묻혀있을 그 옛날의 논둑길, 밭이랑, 별의 수로들에 대해 이 아파트는 고층인데 그 아래에는 감자밭이 있고 무논이 있어요. 날카로운 펜촉은 그날의 삽날이 되어요.
베란다에 잊고 있던 감자 하나가 싹을 밀어올립니다. 이 주방과 다용도실 아래가 그때 그곳의 감자밭이었을 수도 있겠죠. 무뎌지려는 펜촉을 들어 그날의 기억들을 캐서 창가에 올려봅니다. 싹에서 줄기가 올라오더니 감자꽃 하나가 피었어요.
호텔 프린스에서는 남산 타워의 야경이 있지만, 제 주방 창가 얼음호텔에는 감자꽃이 그 어떤 야경보다 멋진 풍경으로 보관 잘된 권총보다 더 반짝이며 그날의 기억을 뻗어올립니다.
펜촉은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삽날처럼 정직하고 기억력이 좋습니다. 어서 펜촉을 물 들어오는 논물에 담가야겠어요. 진초록의 잉크로 그날의 생각들을 적어보아야 될 것 같아서요.
그러나 이 얼음호텔의 투숙객은 조금 슬픕니다. 홍수 흔적 기념비라니요. 세계 어디에도 이런 기념비는 없을 것 같아요.
내 검지와 엄지 사이에
몽당펜이 놓여 있다.
그날의 역사와 슬픔을 노래할 수 있는 권총으로
- 세이머스 히니 ‘땅 파기’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셰이머스 히니 지음, 이정기 옮김 / 나라원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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