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she will stay
April come she will
4월, 그녀는 올 거야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빗방울로 강이 농익고 부풀 때
-Simon and Garfunkel, April come she will
5월 1일 5시 54분,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날이다. 그런 날 별빛의 누수나 아파트 벽에 쏘는 빛. ‘한 번 쯤 날아봐’ 같은 위험한 구호의 누수. 우룻훗, 진짜 나 같이 얕고 얇은 사람이 그 구호에 순종해 거기서 진짜 날아본다고 정말 뛰어내리면? 그녀가 올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메이.
May, she will stay
5월, 그녀는 머물거야.
Resting in my arms again
내 품 속에서 또 다시
-Simon and Garfunkel, April come she will
이런 거쯤은 구름 위를 걷는 폭신한 상상이다. 그러나 거의 일년에 걸친 감정의 누수는 오늘도 쑥좀뱅이풀처럼 나를 갉아댄다.
눈동자가 누수되고 날짜도 셔츠의 촘촘한 단추도 누수된다. 아래층 강아지, 그냥 이름이 ‘아지’인 아지의 하울링도 누수된다. 띵하는 엘레베이터의 소리도, 소방전 앞에 놓여진 자전거의 타이어도 누수된다. 이웃의 웃음도 층간소음도 쪼르륵.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기쁜 날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배전판 고장으로 정전 소식을 알리는 전자음의 실내방송 속 AI 여자는 무감정의 토로. 일방적인 주장도 그 여자 AI의 목소리 복붙 복붙. 복붙의 사라방드. 그럴 때 메이는 오지 않는다. 내 팔에 안겨올 메이는 오기도 전.
살면서 처음 겪는 이런 현실의 누수. 그것이 하나의 상징으로 읽게 되기까진 일년 너머의 꽈당꽈당과 간신한 무릎걸음의 이동. 멀리 해결점의 지평선이 뵈는 듯 마는 듯할 때, 금성과 79개의 위성을 거느린 목성이 만난다고 한다. 3년 3개월만에.
메이가 온다 한다. 이런 분쟁과 고통을 치루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 인사하는 아래층 이웃을 보고 뒷걸음치면서, 기어이 나는 혼란의 딸이 된다. 뒤에 눈망울 뒤룩한 지하생활자 쥐 한 마리라도 있다면. 거기 생활의 하수구가 있다는 걸 후딱 알아채었을 테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습지에서 빼내지 못한 푸른 창포의 발이 쪼글쪼글해진다. 길고양이는 중성화되고 명자나무는 제 발치에 붉은 토악질을 해댄다.
혹시라도 모를 누수의 원인이 우리라면 하는 죄책감. 어느덧 실어의 입술은 수상가옥처럼 둥둥 떠다니며 여러 개의 물집을 건축한다. 빨리 원인이 규명되면 마루를 뜯든 바닥을 파든. 메이야 너는 어디 있니.
그러나 그동안 기록과 사진을 들여다보는 이 순간의 입술은 나에게 레떼의 강물을 그만 마시고 기어이 므네모시네의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달삭인다 이제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메이는 이미 네 팔에 안겨 있다고. 강물이 열매처럼 농익고 편도선처럼 부풀어, 곧 메이가 온다, 올 것이다.
금성과 목성이 소리없이 팔짱을 낀다. 낙수가 없는 천장의 누수는 여전히 원인불명이다. 그러나 미세한 물방울은 여전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 이마 위로 똑똑 떨어진다. 물방울의 공포. 보이지 않는 생활의 미세누수.
이 미세한 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윗층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메이야, 왜 나는 이런 고통을 치뤄야만 하나. 물은 옆에서도 오고 505호가 아닌 905호에서도 오고. 물길은 어디서 열리고 어디서 닫히는지? 메이야, 너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거니.
아파트는 사람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모르는 물길이나 배관 같은 것으로 연결된 이상한 물체. 그 물체 속에서 백일몽을 꾸고 욕조에 누워 ‘누수의 책’을 읽는다.
얼마 전 딸과 다시 본 영화 ‘중경삼림’의 수족관에 이 누수의 기록물을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꺼내보면?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날. 메이는 어디 있는 걸까. 다음은 어떤 상징의 쐐기체로 남아, 나를 기억의 시체공시소로 데려간다. 부디, 지나온 삶과 시간의 궤도. 미추의 어떤 기억들을 누수하거나 누락하지 말라는 듯.
다음 기록은 사실이 아니라, 메이의 ‘가상 일기’같은 거라고 생각하며 읽어본다. 누수는 강물처럼 농익어 물가에 호밀밭을 파란 염색 구덩이처럼 펼쳐둔다.
이렇게 호밀밭이 누수되어 빵반죽으로 누수되고 오늘은 동그랗고 무결한 설탕 코팅 없는 빵으로 누수되어 식탁에 놓여 있다. 메이야, 이렇게 네가 날아가버린다면, 음조를 바꾼 삐삐새 한 마리로.
이렇게 맑고 총명한 햇빛에 나의 육체를 누수하며 걸어간다. 녹말이쑤시개로 불편했던 기억을 녹이며. 쫄랑대며 혼자 낮 시간을 보내는 ‘아지’가 따라온다. 아주 바쁜 듯한 직장인처럼. 그 직장인의 파란 넥타이처럼.
아래층 강아지 아지야. 금성과 목성 사이에는 지구와 화성이 있잖아. 오늘은 그만 하울링 좀 해. 우리집 베란다에 피나타 라벤더 냄새 우수관으로 보내줄게. 그거 맡고 오늘은 그만 울음 종료. 라벤더는 진정위로강정, 천식발작에 효능이 있다.
그렇게 금성과 목성은 만날 것이다. 메이는 여기에 와 내 팔 안에 머물 것이다. 쉬다, 알짱대다, 날아가 버릴 것이다. 금성과 목성은 또 다시 이별할 것이다. 그곳에서 아파트라는 새로운 별무덤, 녹슨 배관으로 연결된 기이한 물체를 내려다볼 것이다.
2.06
405호 주방천장 누수, 관리실 505호 화장실, 비트관, 분배기 점검.
난방배관 문제로 확정하고 공사 요청
(금성도 목성도 빛의 분배기가 있다면?)
3.09
그동안 연락 없어 누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함. 누수는 100% 윗층이 원인이다 주장하는 405호는 그동안 여러 차례 누수. 결로, 코킹 부실, 외부 크랙이나 다른 층 누수 등, 다각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관리사무소에 요청.
누수업체 상담
업자 우리집 점검
405호는 사진 요청 거부, 상담 거부
관리실과만 대화하겠다 함.
(금성과 목성도 관리실이 있나?)
3.29
관리과장 입회 하 업자는 405호 천장은 마른 상태이고 누수 탐지도 안 되니 무조건 공사하면 안됨. 난방배관 누수라면 낙수가 될 터이니, 그때 다시 연락달라고 함.
점검 후 100% 505호 난방배관 누수라고 공사 안하냐고 종용하던 관리과장 본인은 전문가 아니고 전기 전공이라 밝힘.
예전부터 영선기사 405호 주방천장 일부 개복하자 제의했으나 405호 거부
(개복이라니?)
5.10
관리과장 우연히 만남. 공사 운운하며 관리실에 와서 405호가 항의해 괴롭다 함.
누수 업자는 난방배관은 늘 물이 차있어 난방배관 누수라면 낙수가 시작될 거라 함. 그때 다시 원인을 규명하는 게 원칙이라 함.
(금성과 목성은 배관으로 연결되어)
10.01
405호 <여러차례 방문 했으나 반응이 없어 문자드립니다 난방일시중지 후 지금은 말라서 도배는 하려는데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아 석고보드 교체는 안하고 부분도배를 하면 될것 같네요 누수부분은 고치셨나요?> 카톡 옴.
고친 것 없다 답변.
(금성도 목성도 노동절은 메이데이?)
2022.2.22
405호 천장 석고보드 부분 철거. 육안으로 본 천장 깨끗함. 405호 고용한 업자가 시멘트 균열을 보여주며 여기가 누수 발생 지점이라 함.
(금성과 목성에도 가지관이 있을까?)
2.23
관리실 설명.
난방 가동해 물 떨어지나 확인, 하루만 가동해도 낙수함. 현관 화장실 일주일 사용하지 말기. 만일 가지관 누수라면, 자꾸 405호가 힘들다 하니, 일단 도배 먼저 하고 난방배관 물 빼고 나중에 비트관 밸브하면 된다고 함.
원인 불명 누수지만 너무 대응하기 힘들어 손상된 석고보드 일부, 주방천장 전체 도배 견적 받음.
(비트관은 도대체 뭐니?)
2.23
405호가 대화 녹취.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저희를 믿지 못하니 보증금으로 일단 수리비 보낼게요. 저희집이 원인이면 제가 업자 섭외해서 다 고쳐 드립니다.> 카톡함.
(금성이 목성의 대화를 녹취하면)
2.24
405호 누수 보상 내용증명 발송. 우체국 보관 찾아가라는 통보. 소송 예정.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걸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3.3
난방 가지관 이상없다 확인 다시 받음.
점검 중 현관쪽 욕실 배관 간헐적 누수. 안방 욕실 배관 누수 진행 발견.
(금성과 목성에도 결로가 있다면)
4.30
윗층 605호 주인과 협의. 욕실 배관과 천장 교체. 작년부터 물방울 누수가 있었다 함. 물은 정말 어디서온 것일까
*Walter Richard Sickert, Miss Earhart’s arrival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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