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어제 본 런닝 타임 다섯 시간 영화 '해피 아워'는 해피 아워가 아니였고, 호텔용어사전처럼 손님 붐비지 않는 빈 시간, 4시와 6시 사이, 싼 음료와 싼 스낵을 앞에 두고, 텅 빈 홀에서 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였네. 내 발걸음 소리 듣고 내 뜨거운 이마 속으로 들락대는 말 받아적고 내 존재의 하얀 접시 핥는 시간)
매일 매일
사파리 투어를 즐겨요
열대 밀림이 그려진비상 계단을 타고 떠나지요
환청 백화점
이곳에는 빈 카트가 없습니다사자의 반짝이는 갈기와값비싼 안경원숭이 꼬리
구입하고 싶지만
잔고가 없다고요
저녁 8시 이곳에서는 모든 제품을덤핑해요
필요하다면 잠시도 그치지 않는홍방울새의 목젖도 덤으로 받을 수 있어요사자가 육중한 걸음으로 지나갈 때지하 땅 다람쥐는 머리가 지끈거려요
층을 내려오면서 저주파로 변한 소리가
점점점 커지지만
그만해맞대고 고함치거나 대항할 순 없죠
그 대신 페르시아산 문어 다리를
한 팩 구입할까 봐요
질겅대다 보면 이 난청도 멈추겠죠
흡반이 모든 걸 빨아들이면
이 지하는 얇디얇은
공갈빵처럼 부서져요
사파리는 스와힐리 말로
아주 멀리 나가서 보고 배우고
돌아오는 거래요
돌아와 꽝 현관 문을 닫고
왼손에 째깍대는 홍방울새
오른발에 원숭이를 벗어 두고요
오늘 덤핑한 사자의 송곳니
그 날카로운 이빨이 찢었을어떤 살의 떨림에
파르락대며 마주쳐요
가능한 멀리불가능한 가까이
오늘도 투어 버스 차창 유리벽에
코를 박고
하루하루 사파리를 끝내요
공짜 적립쿠폰으로
나혼자만 아는 아주 작은
‘하루살이’ 출판사를 차려요
불후의 단행본을 쓰고
구입하지 못한 환청을
담아요
닳지 않고 구멍 뚫리지 않는
영원한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
거기에 보관만 하고
꺼내보지도 않아요
전지전능 신도 엿듣지 못하고
캐볼 수도 없는
오늘도 환청백화점
회전문은 열려 있어요
어서 쇼핑하러들 오세요
경품으로 내논 안경원숭이가
강아지처럼 할딱대며 당신 발목을
핥아줄 거예요
보유하고 계신
쿠폰이 곧 소멸될
예정입니다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의 ‘하루살이L’éphémère’ 출판사. 하루살이 행복bonheur éphémère은 덧없는 행복을 말하기도 한다.
*빛의심연걷기, photo by 이문숙
#아르코창작기금#시#자본과욕망#바니타스#쇼핑#직장생활#압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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