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형 '겠다'라는 말

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겠다’ ‘겠다’

남자가 외치니 야생양 하나둘 모여


세계 기행 겨울

스위스 산악 편


면회대기실로

떨어지는


남자가 폭설 뚫고 올라와

나눠주는

건초더미


첩첩첩 먹어치우는

소리


현재는 중환자방 장염 걸린

신생아 금식禁食 식별표처럼

샛된 거


환자분 위급하면 침대 난간을

탕탕 치세요

살살 말고 이렇게 쎄게요


저절로 끝나는 건 없어요

알고 계시죠


야간 간호 조무원

싯누런 가래 빨아올리다가

오줌 펑한 기저귀 갈다가


생사 오가는

말 못하는 호흡기 환자

솨솨 울리는 규칙적 잡음 같은

숨소리


기계 낀 목구멍으로

옆 침상 아가 빽빽대며 울때마다

얼떨결에 속으로

‘겠다 겠다’


면회객 손바닥에

퉁퉁 분 손가락으로

‘겠다 겠다’


소리 없는 목소리로

‘겠다 겠다’ 자장가

불러주다가


되려 사라졌던 호흡

첩첩 돌아와


벽 플라스틱 튤립 장식

병 속 가래처럼

부글대며 피는


현재는 ‘간신히’고

과거는 오히려 ‘겠다’인 거


금식표 떼고

신생아에게 처방된 묽고 흰 음식처럼


기계 뺀 구멍 새살 덮혀

‘겠다 겠다’

반복하며 외치는


옆 침상 아가 울음 소리에

살아났어

정말 그냥 끝나는 건 없어


핏자국 선명한 병실 벽 타일 속

움푹 패이는 폭설

구덩이


빠질 때마다

겨우내 비썩 여윈 야생양

앞발 내밀어


알지 못하는

근미래로 쌩하고

이륙하는


*잘린나무다시심기, photo by 이문숙

#아르코창작기금#시#생명#울음소리#세계테마기행알프스편#survivor's guilt#살아갚기

#prayfor이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