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도둑

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이곳에 윌리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

유월 가방 속에는 열쇠가 짤깍짤깍하고

택시는 종종 다른 윌리엄 로에 우릴 부려놓아


오랜만에 열쇠를 쓰는 게 좋아

무료할 때마다

문을 잠그고 돌려보아


오른 방향으로 돌리고 반대 방향으로

돌려 빼 보는 일

천천히 캄캄히 얇게 시선을 낮추어


옥스퍼드 서커스 대로에서 네 가방을 뒤졌지만

열쇠는 다시 넣어둔 소매치기 소녀

손가락처럼


오랫동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나는 6월에 떠나야 하고

너는 돌아와야 하고 너에게 열쇠를 넘겨줘야 하는데


믿고 맡길 윌리엄 하나 없는

윌리엄 로드 23번지

그래서 열쇠를 네틀리 초등학교 울타리

넝쿨장미 아래 묻기로 했어

네가 거기 묻고 떠나

내가 거길 파서 찾을 게


옛날 우리는 한 개 뿐인 열쇠를

집 앞 화분 아래 숨겨두었지

화분을 들추면 쥐며느리가 함께 나왔어

열쇠가 실뿌리에 뒤엉켜


근데 학교 수위가 화단을 돌보다 그걸 파서 버리면 어떡해

*딸기 도둑처럼 새가 훔쳐가거나


그럼 우리 이건 어때

가끔 집 처마에서 끼룩대는 갈매기 깃털 속에 묻어두면

바다는 없는데 어디선가 뱃고동이

뚜 울리고


이곳으로 돌아온 나는

짤깍짤깍하는 작은 새 울음에도

어김없이 깃털 속 숨겨둔 열쇠가

오른쪽 왼쪽으로 스르르 돌아가고


*잠금쇠에 열쇠 달칵 맞춰지는

공손한 소리


흔해빠진 윌리엄이지만 믿고 열쇠 맡길 아는 윌리엄 하나 없는

그곳에서 너는 무사히 잘 있니


열쇠는 잘 묻혀 있었니

딸기 도둑이 훔쳐가진 않았니

그곳에도 쥐며느리들은 고물고물하였니


* be keyed up, 신이 나다에서 ‘key’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strawberry thief’

*딸기도둑새,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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