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코가 너무 길어
비행기 탑승도 할 수 없고
따뜻한 온천물 있는 요양원에도 갈 수 없는
침대에 누울 수도 없어
결국 자신의
협소한 동공 속에 빠진
새벽에 나가던 그가 황급히 비닐 위생 팩 하나를 챙긴다
왜, 무슨 용도로
화생방 경보가 울리면 뒤집어 쓸 것인가
지나가던 운하가 터지면 구명정을 지을 것인가
하우스 골조를 덮어 새들을 질식시킬 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나무를 재배하려는가
모른다 몰라
비닐 팩을 부풀려 가보지 못한
카프카의 안개 자욱한 성에 들어가
쾅쾅 얼어붙은 잉크병을 입김으로 녹이려나
남몰래 노후보장용 보험계산서를
비닐 속에 밀봉해 두려나
그는 주말마다 성채처럼 화려한 연회장 부페에 간다
주차장 알바가 끝나면
손님이 다 파한 자리에 앉아
맘껏 남긴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고통의 만찬처럼 차려진
쓰레기통에 곧 버려질 지도 모르고 온갖
아양을 떠는 음식들
즉석요리 코너에서
분홍 살 아래 마구잡이로 분해된 뼈
식용염료로 채색한 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접시에
아주 우아한 동작으로 고추냉이와 살 서너 점을 얹는다
그렇게 종업원 몰래 그곳을 여러 차례 다녀온다
매번 한 점을 먹는 척 세 점을 비닐 팩에 담는다
그는 그걸 거대한 코 속에 담아 전천후 미래형 도시버스를 타고
온다
식탁에 놓인 접시
분홍빛 이것은 무엇인가
작고 앙징맞은 고추냉이 장식의
뼈가 순장된
그는 그녀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맛있어
거기서 당신을 위해
'쌔벼' 온 거야
비닐은 비 줄줄 새는 구멍 뚫린 지붕을 덮어주기도 하고
멀고 먼 노후한 금도금 벗겨지는 성채를
포장하기도 한다
비닐 주머니는 지극히 카프카적이다
기괴하고 우울한 긴 코를 가졌다
세상의 모든 명예와 망상과 광기를 훈제한다
여자는 단식광대 얼굴을 한다
운다 웃는다
맛있어 정말
맛있
여자의 코도 그 남자의 코를 따라
점점 길어진다
비닐 주머니를 부풀려 비행선을 만들어 타고
언젠가 그곳에 가자
황금소로 파란 쪽문 골방
‘쌔벼’온 연어의
아니 언어의 흐물거리는 살점을
기괴하게 긴 코의 그 남자에게
조금 나눠주러
고관대작이 되려고 도서관에서 죽치다가
서가 한 구석 깍깍대는 카프카 당신에 덜커덕 빠져
결국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한
그래서 세상에 노후용 보장보험 하나 없는
이 점점 코가 길어지는 당신의 훈제된 이야기를 들으면
카프카의 코도 점점 길어지다가
*카프카적이 되겠지
*Kafkaesque: 기괴한, 괴팍한, 부조리한
*맨홀,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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