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지

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뒷베란다에서 새가 운다

시시하고 오래되었다


ㄱㅈㄱㅈㄱㅈ

한달째


누군가는 혼사를 치룬다

신행을 간다

그 모든 ‘당장의 사람들’은 어디 간 것일까


떨어진 열매가 쩍쩍 갈라진다

아기들이 보모 손을 끌고 간다


야맹증 걸린 가로등은

대낮인 줄도 모르고

더듬더듬 빛을 내려놓는다


썸머타임은 이제 끝났어

여긴 일교차가 심하고

난방이 안 되지만


걱정 안해도 돼

주인집 개를 배 위에 올리고 자면

춥진 않아


ㄱㅈㄱㅈ

ㄱㅈ


신행에 입었던 삼십 년 전

옷을 표백제에 담그니 감쪽같이

새옷으로 돌아온다


신행 간 사람이 우주인처럼 돌아오고

엄마를 유기한 아기들이 아장아장한다

삑삑이 야광 신발을 빽빽대며


나는 밤에는

미혼모를 위한 아기 우주복을 만들어


서툰 실땀을 꿰고

좋아하는 스티치는 사슬뜨기

마지막으로 똑딱이 단추를 달아


바닥에 떨어진 쩍쩍 갈라진 열매 새파랗고 보기만 해도 미간이 시큼하고 이곳은 한낮이고 그곳은 밤이고 인적 뚝 끊기고 썸머타임이고 바람은 시큰둥 시향지처럼 지나가고 일조량이 적고 떨어진 씨앗에는 독성이 있고 개가 잘못 먹으면 탈이 나고


똑딱하고 맞춰지는 이 작고 음험한 짐승의 입은

누가 닦아줄까

말간 항문은 어떻게


배변봉투를 들고 다니는 견주들처럼

11월이 스르르륵 정오의 목사리를

바짝 당길 때


냉장고에 붙여논 포스트잇

ㄱㅈ은 ‘견자’


삼키면 창자 뒤틀리고 탈수 일으키는

독성 가득한 열매 떨어지는 나무

그 아래 어린 개를 풀어두는 ‘견주'


실 잃은 바늘처럼 톡 쏘는 ‘겨자'의

머리 글자 같고


ㄱㅈㄱㅈ

ㄱㅈ


삼십 년 전 옷은

어떤 미래로부터 아장아장 걸어온 것일까


빨래건조대 휘도록

변색했던 싯누런 물 뚝뚝 떨어지는


바람이 찢긴 가지 그 시향지를 뒤흔들어

보챌 때마다

시큼 쌉사름한


여기에 빈 요람이 있어요

ㄱㅈ ㄱㅈ

ㄱㅈ


*시간칸타타, photo by 이문숙

#아르코창작기금#시#기다림#시차#초성놀이

#prayfor이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