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사진 앞에
항아리 옆에
놓는다
그녀가 좋아하던
흰팥소 파이
파이에
팥소가 빠져 있다
진눈깨비 흩어진다
교환하러 갈 수 없다
나는 텅 빈 파이 속에 들어가
진눈깨비 하얀 폐막식을
기다린다
팔에는 애초부터 없는
은곰 트로피
이런 오후에는 나에겐
실비보험 특약 같은 게 없고
다만 하얗게 부서지는
오후가 있다
갈 수 없다 우산 들 팔이
사라졌다
그 대신 팥소 없는 파이 속에
웅크린다
팥소는 그냥 팥소가 아니다
나쁜 세포가 좋아하는
달디단 의뭉스런 것
감염원인 머리칼 삭발한 그녀
손가락으로
부스러기 몇 알 찍어 올려보는
아주 야물게 슬픈 것
길가에 서 있는데
여기서 청아공원 가는 버스가 서나요
묻는다
여자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상자
그속엔 뭐가 들어있을까
(난 빛의 호텔에 투숙했어
멸균된 별들이 점멸되는
이곳의 야경이 끔찍하게 아름다워)
전송실패된 문자처럼
그녀 목소리 왱왱하고
(여긴 모든 게 반입 금지야
바깥 불빛조차 보균자로 보여
우습지 않니)
여기서 나가면 사랑만 할 거야
미움을 탐식하지 않을 거야
잃어버린 혈구를 반지로 만들어 낄 거야
나중에 같이 못한 여행도 하자
(네 그래야죠)
은곰 트로피에
은곰이 없는 것
진눈깨비 *빛그물로 반짝이는
교통 전면통제된
먼 붉은오름
체인을 감는데도
도대체 갈 수 없는
곳
진눈과 깨비 사이
그 간격처럼
그녀가 준 은반지나 빙빙
행성처럼 돌려보는
진눈깨비를 뭉쳐
은곰을 만들거나
진눈깨비를 바수어
흰팥소 파이를 빚거나
*최정례 시인의 마지막 시집 ‘빛그물’
*노란영원,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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