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

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와인 잔에는 올해의 가장 붉은 피

네 부드러운 살갗으로 빚은 뇨끼


냉담천사들이

레이스 긴 손장갑을 끼고

앙트레로 이걸 먼저 준비해뒀어요
너무 침잠하면 성대 결절로 목소리를 잃을지 모르니

살짝 맛만 보세요.

고작 발가락 양말 같은

핑거 푸드예요

(메뉴 앙트레)

오만우월불화질투과시회한

외면권태

(한 가지만 선택하시오)

질식사하지 않게 꽃상추로 싸서 드세요

야들야들 초식동물처럼 목에

두르시던가

은식기에 담긴 눈동자

연골접시에 놓인

숨통 끊어지기 직전

졸참새 요리


알코올 램프가 그 순간의

목소리를 식지 않게 보존하죠


장식적인 수사는 금물이어요

물방울 뚝뚝 떨어지는 얼음 조각

인어 상


유리 테이블 위로
천사들의 현란한 피겨 스케이팅


닳고 단 방석에 공작 자수가

푸르락파르락대는 밤


선물 보따리 진 산타클로스가

빠져나오려 버둥댈 때마다

비좁은 굴뚝


숯검댕이 날리며

킬킬대는


우울과 조증으로 짠 빨간 목 폴라

머리 끝까지 끌어당기고


제각각 제 말에 익사해

호수가 쩌억쩍 벌어지며

실족을 기다리는

인어들이 세신사에게 꼬리를 맡기고

지느러미를 씻는

거룩하고 갸륵한


냉담 천사가

눈에 흰 냅킨을 두른 채

꽈당 넘어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 피겨 선수처럼


다음 스텝을 송두리째 까먹고

말의 가다랑이를 쪽 찢는

밤 하늘에

스케이트 날 자국이 xxxx자로

가득한

핑거 푸드가 고작

발가락 양말 같은


이 밤

*공작, photo by 이문숙

#아르코창작기금#시#연말#파티#부재#송년회

#prayfor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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