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과 사암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by 시인 이문숙

지오판의 다방과 야류의 사암들. 골목의 미로를 돌며 땅콩아이스크림 밀전병이 녹는다. 비올라 다감바 모양의 오카리나가 달그락댄다.

비비작대는 어딘가의 새 소리. 그 소리는 이곳의 향신료. 날개의 마찰과도 같고 부리의 파찰과도 같아. 너는 민간의 옷을 벗고, 군용소포 하나를 보내고 짧은 편지를 하나 썼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옆구리에 끼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이 '야류의 야료의 아류의' 골목을 걸어. '찌푸린 얼굴'은 네가 언제나 '문제적 인간'이라는 따가운 햇빛의 선물.

너를 얼마간 잊으려면, 이 모래와 해류의 입맞춤이 만들어논,그 해변의 무정형의 사암으로 너를, 너의 '찌푸린 얼굴'을 세워두고 가야 해.

낯설고 상투적이고 싸한 이 골목에서 너를 분실하는 즐거움. 휘휘한 종아리가 가벼운 돛배같은 견갑골을 받쳐줄 때, 해풍은 너를 치밀하게 흩어놔.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 너를 다시 만들어. 분만하고 양육하고 언쟁하고, 으르르 냉동고처럼 너를 얼려.

꿈결처럼 왔다가 도란거릴 시간도 없이 너는 갔네. 너를 기다리다 국물은 졸고 만두는 불어터지고 고기는 질겨지고 '허둥'이라는 이 미로 속에 너는 펄펄 서 있네. 펄펄 끓고 있네.

선생인 밤은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흑흑 솟는 흙먼지만 봐도' 흐뭇하셨다는데, 너의 솜털 애숭이 지뢰 폭파범은 그 분진만 봐도 숨이 가팔라졌다는구나.

공책만 더듬거리던 너의 긴 손가락이 '지뢰'를 만질 때, 그 야전은 '야류'의 사암처럼 단단해졌겠구나.

네가 두고간 민간의 일들만 네 방에 남았구나. 오랫동안 못보겠구나. 그러나 너의 웃음소리가 열대과일 속에 채워지고 그 웃음소리가 차려둔 소찬은 언제나 최상의 축일이었구나.

깨고 자고 그 사이에 기억은 왔다가 '훤칠' 가버리고, 나는 수시로 달궈진 그리움의 주물에 손을 덴다. 거기 남은 갈변의 자국이 오랫동안 남겠구나. 갈변이 짙어진다.

스쿠트 항공이 하늘에 남기고 가는 갈변의 자국. 그래도 그 위로 번지는 노을은 '영혼의 방화범' 같다. 그 골목길의 오래된 다방은 '영혼의 폭파범' 같아.

그러고 보면 나도 가끔은 부드러운 테러분자. 옆구리는 단단해야 해. 그리고 숨을 허파에 채우고, 부드러운 옆구리에 '허리띠를 졸라매gird your loins.'

밤은 선생처럼 말이 없어. '사물을 바라볼때, 심미적 기준에는 그 짧은 여행에서 보았던' 야류의 사암이 있고, '춥고 검은 도시의 맑은 하늘'과 '찌푸린 얼굴들의 잔영 같은 것이 늘 들어있어.' 열대과일의 수액이 출렁거려.

이 골목의 미로에서 미아가 되기 위해 고요한 덧니같은 상점들 사이에 기념품처럼 진열장에 누워 있어. 그리고 '이를 악물어grit your teeth.' 이를 뽀드득 혀로 훔쳐내. 그리움의 '축농'을 킁킁거려. '잔영'의 영사기를 돌려.

얼굴을 '찌푸리는' 인간은, 괜하고 근거 희미한 '아류의 희망'을 감히 말하지 않고, 희망의 건들거리는 '축농'을 건드리고 대적하는 인간.

'갈변하는 세상'에 맞대면하며, 모래도 단단한 '사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정지하지 않고 늘 철썩대는 '해류'의 편에서 말할 줄 아는 '테러분자.'

아이스크림과 사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