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장

이문숙#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깻잎이 파랗다. 그걸 보는 로사의 치통이 점점 심해진다.

(티에리 파코Thierry paquot는 '지붕, 우주의 문턱 Le toit; seuil de cosmos' 에서 '천창' 이란 단어가 '램프 lucerna'나 '횃불luiserne'에서 유래했다고 쓴다)

파리의 천창은 ‘ㅅ’처럼 생겼다. 그 아래 깻잎은 불법체류자처럼 자란다. 'ㅅ'의 횃불을 마시고 푸른 등燈을 꺼낸다. 로사는 말한다. 여기 세입자들은 깻잎 냄새를 싫어해.


(그때 깻잎 냄새가 무대와 객석을 덮는다)

리타는 매일 쓸고 닦는다. 로사의 식탁, 로사의 찬장, 책상, 서랍장. 테이블에 눌어붙은 음식 얼룩과 손때들. 먼지는 뭉쳐논 털벌레처럼 기어간다.

로사는 그 아래서 단어를 외운다. chemin, être, fille, garçon, nuit. 새파란 치통으로 집중이 안 된다. 로사가 단어를 반복적으로 외운다. 리타는 ㅅㅅ의 배낭에 지고온 참기름으로 새우젓으로 고사리로, 로사를 위해 닭개장을 끓인다. 그 파란 깻잎을 듬뿍 넣어. 음식 앞에 앉은 로사의 눈이 ㅅ의 횃불처럼 켜진다. 맛있다, 정말.


로사가 음식을 허겁지겁 걸터듬는다. 리타는 조용히 고국에서 리타 이름으로 처방해온 알약과 물 한 컵을 유리잔에 담아준다. 30분 뒤에 먹어.


(로사는 책상에서 움쩍 안한다. 깨알 같은 단어만 적는다. matin, dormir, aile, âme, âme, âme)


리타는 옷으로 끓어넘치는 서랍을 정리한다. 버리지 못하고 쌓아논 낡은 종이들의 산과 비닐 팩의 둔덕, 패트병들의 연못을 치운다. 미끌거리는 욕조에 락스를 풀어 닦는다.

(리타의 음식 냄새를 맡고 리타의 발소리를 들으며 깻잎은 성큼성큼 자란다. 깻잎도 어느덧 이런 리타를 좋아한다. 리타 역시 살랑대는깻잎의 춤을 보며, 앵발리드라는 역 이름이 상이군인이라는 걸 떠올린다.)


앤지는 단어를 외우다 잠드는 로사를 안경 너머로 본다. 간이빨래대 위, 눈물 먹은 로사의 솜베개에 얼룩이 번진다. 로사가 주방 타일에 누덕누덕 붙여놓은 어린 소녀들의 화보에 기름방울이 튀어 누렇다. 리타가 떼어버리려 하자 로사는 펄쩍 뛴다. 안돼.


그러다 펄쩍 주저앉으며, 로사가 말한다. 쌓여있던 비닐봉지가 풀썩한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가늘고 홑홑한 종아리.


*물방울화석,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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