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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Sep 12. 2024

발로 뜨는 아후강이라니

-위브

계단을 내려가며

한 발 한 발

아후강을 떴다


살모사 같은 빛 새나왔다

캄캄했으나 고요했다

제 발 소리에 제가 놀라자빠졌다


긴뜨기 짧은뜨기

사슬뜨기

코를 넣었다 뺐다


그날의 실은

해피코튼 같은 것이어야 했을까


사슬 6개 짧은뜨기 12개

긴뜨기 12개

먼저 꽃심을 뜨고


다시 긴뜨기 5개

첫번째 코와 다섯번째 코를

함께 빼주면

꽃잎 하나가 생겨났다


다시 사슬 3개

같은 방법으로 반복해서

꽃잎 한 장 두 장

다섯 장


한 명 두 명

다섯 명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아후강 꽃이 쌓였다

다알리아가 글라디올라스가

샐비어가 모르는 꽃이


꽃 같은 걸 떴는데

기괴한 식물이 자랐다


폐장된 지하저수조

거긴 왜 가자 했을까


발을 옮길 때마다 텅텅 울렸다

누가 발을 헛디뎠다

누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친구 집에 모여

아후강 꽃을 떴는데

왕거미처럼 묵묵히 앉아

꽃만을 떴는데


긴뜨기 짧은뜨기

바늘은 대나무 말고

가벼운 알루미늄 같은 것이어야 했을까


가시 박힌 손가락으로

코를 걸고

살을 베며 실을 당기고


누가 어디선가 툭 떨어진다

절벽이 아닌데 절벽보다 더 가파른

곳에서


아후강 아후강 꽃을 이어붙여

그 아래 에어매트로 깔아주면

꽃들에게 더 이상 적의를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친구 집에서 아후강 꽃을 뜨다가

긴뜨기 짧은뜨기 사슬뜨기


갑자기 바늘을 팽개쳐두고

실을 검지에 휘감은 채

누가 거기 내려가보자고 했을까


6개월 동안

방 안에 틀어막혀

*만다라 매드네스를 뜨는 걸

봤다


울고불고

풀고 이어붙이고 소리 지르고


찌꺼기 눌어붙은

일회용 그릇 컵 봉지가

뜨는 만큼 늘어났다

미친 짓일지도 몰랐다


지하저수조 발소리가

쾅쾅 울렸다

어지러워진 방 안을 때렸다


아후강 꽃을 모여서 다만

조용히 모여앉아

얌전히 뜨고만 있었는데


누가 졌다 누가 떨어졌다

머릿속에 기괴한 식물만 남았다


발로 발을 교차하며 뜬다

어디든 허공에 떠있는 매트를

왕거미의 편물처럼 끔찍하게

아름다운


그날의 스텝은 왜 아래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위브weave 스텝이어야만 했을까


*쉘위댄시shall we dan詩, 연작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써야지. 춤추듯 시를 토슈즈 없는 맨발로 발바닥이 벗겨지고 발가락이 툭 떨어지도록.


#위브스텝#아후강#시춤#쉘위댄스#뜨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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