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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에 심취한 밤

-환상방랑

by 시인 이문숙


얼음 호수나 정발을 건너 들르는 커반이 카라반caravan 같다. 사하라를 건너는 낙타들. 등에는 두 개의 봉우리,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그 사이 착란.


(추위에 항복해 지나가던 건물 통로에 파랗고 성성한 대파가

한 대접 펄펄 끓는 붉은 회오리에 녹아들기 직전)


대파가 씽씽하다. 에스터리스크asterisk 같다. 언어의 불가능성을 넘어서는 추론의 어떤 형식. 별표와 별표의 분만. *, **, *****. 탄생과 표류와 흠숭.


새파란 대파의

파안대소.


책방을 찾아본다. ‘행복한’이라는 말은 ‘행복한’이란 말을 알고 있을까. 겨울 노점에 놓인 얼갈이 배추 같은 의혹을 품고 골목을 돌고 돈다.


회화나무 한의원 지나, 던애드워드 페인트 가게 지나, 먹자골목 미락손만두집 지나. ‘행복한’이라는 말은 ‘행복한’이란 말을 지나쳐 ‘ㅣ’ 하나가 빛 속으로 실종된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행복한 아니고 ‘항복한’ 책방인가.


찾지 못한다. 골목 맞은편 야쿠르트 복장을 한 아줌마가 뮤즈처럼 우아하게 스르륵 전동 수레를 밀고온다.


소리없이 묻는다. 골목을 샅샅이 돌아왔을 그 고마운 바퀴에게. 여기는 아닌 것 같아요.


다시 골목을 꺾어 본다. 거기 파랑새는 행복을 찾아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파랑새 모양 로고를 한 '항복한 책방'이 있다. 그런데 2시가 되어가는데 유리창 너머는 텅비었다. 휴점일일까.


방수 잘되는 날개 위 무용한 물방울처럼, 프리모 레비의 칠면조 재배법처럼. 깃털 하나를 땅에 심어놓고 칠면조가 번식하는 걸 기다리는 사람처럼 터덜터덜 다리는 다리의 말을 한다. 무겁고 아파. 좀 쉬면 안돼.


다리를 위해 소름 도돌한 살코기 산다. 잠든 닭의 살을 파먹던 족제비. 그것도 모르고 횃대에서 밤을 보낸다. 그것도 알지 못하고 흰 달걀을 낳는 레그혼들.


칼 아래서 너덜거리는 모가지. 모가지가 잘리고서도 퍼들거리던 몸. 육체의 파안대소. 웃음 소리는 비명 소리와 어떻게 닮았을까.


임의의 육식주의자로 여생을 살려는 걸까. 생로병사라는 프로그램을 매일 시청하는 ‘항복한’ 사람. 일주일에 남의 살코기를 먹으려 지금은 부단히 쥐어짜는 ‘항복한’ 착즙기의 사람.


마트에 사막처럼 쌓여있는 노란 레몬과 캘리포니아산 *오랜지. 열대가 농축된 과일들. 상처 하나 없는 껍질들.


보조보행기를 밀고 문 앞에서 낑낑매는 깃털모자의 사람. 가짜 반짝이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 모자 스웨터 바지에 과도한 구슬 짤랑이는 사람. 과일에 묻은 하얀 농약 가루를 인조피 가죽 장갑으로 쓰윽 문질러 보는 사람.


야쿠르트 아줌마가 지나가는 보조보행기 반짝이 할머니 두 분을 불러세운다. 그러더니 그들이 들고가던 맥심 상자를 낚아챈다.


그렇게 들고가단 '손아구' 나가요. 얼른 비닐 봉지에 담아 건네준다. 손아귀 아닌 손아구.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구가 쩌억 입을 벌리며 노란 콩나물 위에 누워있는 거 같아. 여전히 아삭하고 사랑스러우며 저작할만한 세상.


말라있는 분수. 수영 금지 감전 경고. 우리는 수천 수만 번 ‘행복’이라는 말에 감전을 한다. 사실은 잘 모르는 말을 혀가 먼저 꺼내놓고 놀라기도 하는 어리둥절의 그 한 페이지.


파행하고 기각한다. 일축하고 지연한다. 임의제출한다. 은닉한다. '손아구'의 힘이 빠지기 전. 손아구는 아무래도 손아귀보다 힘이 세다. 사막을 쉬식대며 가는 낙타. 그 숨소리에 악력에 ‘항복한’ 사람.

책방은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어떤 장소, 무의한 시간의 처소. 무모하리만치 연속적인 밤이 덜그럭대며 찾아온다. 온다.


눈 찌푸리는 시디신 레몬, 오랜지의 시간을 쪼개는 밤의 시간.


차라리 ‘항복한’ 시집책방 내고 싶다. 작은 주점 '계루' 옆에. 서가에서 늙어가는 시집 총채로 활활 먼지 털고. 땅색에 가까운 색을 내기 위해 훈데르트 바서의 붓 아래 송두리째 부서지던 흰개미집처럼 씻어.


책방 이름은 야생화 수 잘 놓는 친구 은희와 한다면 '시와 수' 혹은 '시와 바랭이풀'일 것이다. 영어책 좋아하는 친구와 한다면 '사월 소낙비와 오월 넝쿨장미'일 게다. 폴과 한다면 '시와 4시 반'-칼퇴근과 저녁생활 보장-일 것이다.


매해 소풍갔던 선죽교 선명한 붉은 핏자국을 그리워하던 지금은 먼곳 계신 피난민 농부 부모님과 차린다면 '시밭' 혹은 '시와 얼갈이배추.’


삐꺽이는 무릎의 깨끗한 항복의 말, 펄펄 끓는 국물 속 새파란 대파의 말. 이 빠진 그릇 아닌 저녁의 책상에 놓인 에리에리한 얼갈이 배추의 말. ‘손아구’를 펼쳐 끄적여 봐야지.


집시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빈다. 노란 달에게. 달은 서약한다. 그 사람과 낳은 아들은 내가 데려갈게. 빼앗긴 달에 사는 창백한 그림자.


시간 노임이 높다고 단기 물류 알바를 간 달의 아들. 아직 못 돌아온 밤. 10시 55분 가장 달빛 빈빈彬彬하다는 밤. 난방을 켜지 않는다. 난방빈 점점 왜 비씨지나. 새파란 대파처럼 무섭게 성성한 밤.


갑지기 혀가 단축한 ‘난방비는’ 아닌 ‘난방빈’의 자동기술. 왜 가난할 빈貧이 따라오지. 달이 레몬 같거나 오랜지 같거나 그냥 달덩어리 같거나 쓸모없는 암석의 집합체이거나.


*오랜지: 오렌지를 일부러 ‘오랜 지’의 감각으로 ‘오랜지’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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