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헛헛헛헛휏징
정월 대보름 하루 전, 달은 백남준 식으로 말하면 인류 최초의 거울이다. 검은 밤의 거울. 거울 속 심연. 견장 달린 자기애에 빠지면 미치거나 그곳에 익사한다.
그러나 이런 밤 이런 밤의 낮에는 자기애가 아닌, ‘자기 대면’의 결속자가 되어본다. 거울을 산산조각 파괴하는 이 약간의 ‘귀여운 광기’를 허락하는 그자. 가끔 나를 미치게 하는 자.
친구 에이프릴 때문에 줌파 라히리에 미치고 줄리안 반스에 미친다. 샅샅이 찾아본다. 정지돈에 미치고 파스칼 키냐르에 미치고, 폴 때문에 사무엘 베케트에 미친다.
필사하는 글씨가 미치고 미흡한 정신도 횅 돌고 삭제도 안했는데 사회 관계망 게시물은 저절로 미쳐 증발한다. 함성을 가득 담은 대보름달은 개다리소반에 소소하게 차려진 부럼과 나물을 삭제하고 무친다. 모두가 해묵은 나물을 미치고 무친다.
5층 다용도실까지 올라온 회화나무, -japanese pagoda tree라는 학명을 이물재공원 패찰에서 보았다-가지가 사슴 뿔처럼 얽혀있다. 이 비슷한 학명을 매화나무 검은 줄기에서도 본 적이 있다-japanese apricot였다. 왜 모두 '일본의' 꽃 장식을 달고 있을까.
한동안 가와가미 히로미에 미치고 아오이 유에 미치고 영화 '메카네'에 나오는 기이한 해변 체조에 미쳤었다. 쿠사마 야요이에 마루야마 겐지에 돌았다.
세상의 문법학자는 내가 오뎅이라 말하면 어묵이라고 반드시 교정한다. 미관광장을 건널 때마다 소녀상 뒤에 그림자로 남은 희생자 할머니들 생애에 미치고, 눈가에 그렁한 '악어의 눈물'들에 돈다.
모든 한시적 욕망과 슬픗한 기쁨과 이 환청과 환각, 환시에. 느리고 지긋한 신사의 예언자의 문법학자의 판관의 어법에. 이 결핍의 희끗희끗한 은발들에. 기여코 검은 모자를 뚫고 올라오는 머리칼 새치에, 세 치 혀들에 애도를.
소녀의 머리에 누가 손수 뜨개한 모자를 씌워놨다. 자녀를 잃은 엄마들의 ‘그리움을 만지다' 뜨개 전시 포스터를 조금 미쳐서 보다가 미치다미치다미치다미치다.
에도 시대, 먼저 개화에 미쳐서 빈센트 반 고흐 아닌 훈데르트 바서까지 일본 우키요에에 미치고, 가와바다 야스나리 아닌 혼자 책 읽고 글씨 쓰는 설국의 정말 쓸모없이 무용한 헛수고, 게이샤 '고마코'에 미치고, 오지 않는 봄의 입춘대길이라는 휘호에 미치고 같은 길자 돌림인 풍산수길에 휑 돌고. 헛수고 헛걸음 헛말 헛웃음 헛물. ‘헛’으로 시작되는 이런 말들도 있다.
헛접: 딴짓의 사투리
헛휏징: 험험징: 헛헛증, 텅 빈 듯한 느낌. 허전하고 안절부절하는 마음.
다시 살아볼 수 없는 한 번뿐인 삶. 그런 삶의 외양을 부여한 그자. 헛헛헛헛헛을 허락한 그자.
헛물망사리: 해녀들이 전복이나 소라를 잡는 ‘헛물질' 할 때 사용하는 망사리이다. 그물짜임새가 촘촘하며 크기는 보통이다. 사시사철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본형.-제주 해녀박물관
그자를 웜이라 부르자. 하지만 한 번 더 사는 거잖아. 어디에나 늘 있는 그 삶을.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그 삶을, 이런 사기를 당하고서, 우리한테 소리칠 수 있도록.
-사무엘 베케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그자를 ‘헛’이라 부르자. 그자를 ‘헛헛헛’이라 부르자. 그자. 고작 한 번뿐인 삶을 허락한, 그자 ‘헛헛헛헛헛’에게. ‘헛물망사리’를 주자. 사기라고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시간으로 잠수해 전복을 캐자. 그 전복으로 삶의 권태를 전복顚覆하자.
일상 밖으로 소라처럼 흘러나와 ‘헛접’을 시도하자. ‘잘’ 실패하여 그렇게 얻은 소라를 망사리코에 꿰자.
겨울이 거울이 되는 오후. 쉽게 판관이 되고 문법학자가 되는 세상의 세리들아. 세리들의 세치 혀들아. 세 치 혀의 세습자들아. 입술을 모으고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보아. 먼 바다 ‘귀여운 광기’가 내는 해저의 음악 소리를 들어보아.
#사기#판사검사의사교사#광기#해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