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양말양말

-5월 ‘내가 싸우듯이’

by 시인 이문숙

저동중학교 담벼락 아래 보랏빛 빛다발이 노란 분말을 으깨며 떨어져 있다. 멈춰서서 올려다 본다. 문득 오동나무가 서 있다. 이곳은 누가 살았던 곳일까.


누가 어떤 기원으로 이 나무를 심었을까. 삶이 찬란한 폐허가 되려할 때 맞닥뜨린 나무. 보랏빛 샹들리에처럼 켜진 나무. 그 위에서 빛의 무희들은 팽그르 돌아 떨어진다.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잔뜩 오므린 발등의 곱사등이 언덕.


정지돈의 소설 '내가 싸우듯이'의 '건축이냐 혁명이냐'. 거기에서, 왕족의 후예인 건축가 이구는 선을 그을 때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자기 혐오'에 빠진다. 그는 빛의 매력적인 덧니를 질서있게 교정한 균일한 치과 기공사 같은 자신의 건축물을 평생토록 부끄러워 한다. 그렇듯 무감하고 정밀성이 떨어지는 새문안교회와 명동 중국대사관을 지은 사람.


그래도 이 날림의 조립식 가옥 같은 건물을 올린 자는 오동나무는 뒤란에 남겨 두었네. 전기톱의 으르렁거리는 포효에도 이 나무는 파리하게 살아남아, 5월이 오는 첫 어두운 골목에 화등을 고집스런 껍질 밖으로 꺼내드네.


나는 길가 표지석에 걸터앉아 내가 두르고 있는 가장 사소한 껍질 중 하나인 양말을 벗어본다. 그리고 발등에 보랏빛 등 하나를 올려본다. 뜨겁고 화끈거린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혼란의 다리미로 다려본다. '신발 압류'같은 광고문을 붙여놓은 초록색 테이프가 길바닥에서 노글거리며 뜨거운 빛의 대방출에 녹던 길. 신발창에 끈끈하게 달라붙으며 따라오던 길. 그리고 그 길을 이어 선을 그어보면, 그 길이 얼마나 우왁스럽고 저혼자 고양되며 왜곡되고 잘못되었는지.


어찌 되었든 나는 양말을 사랑하는 사람. 양말을 벗거나 신으며 맨발의 무희가 되길 원하는 사람. 구겨진 '양말'을 손바닥으로 펴며 가끔은 내가 걸어왔을 길을 옆에 개켜두고 들여다 보려는 사람. 다섯 개의 발가락과 동그란 발꿈치와 발등의 엇갈림과 그 혼요로운 일치와 오롯한 품앗이를 생각하는 사람. 발목과 복사뼈의 공명에 귀를 내주는.


두 개의 매혹적인 뿔을 가진 '양'이라는 짐승이 매애하고 울며 이 주저앉음의 순간, 반짝이는 갈기를 가진 '말'이 되어 순한 눈을 끔벅일 때까지. 양과 말이 어울려 기어이 '양말'이라는 가장 고단하고 우아한 짐승으로 탄생하기까지.


오동나무에 깃드는 봉황은 드높은 오동나무 열매 아니면 먹지 않는다. 차라리 굶고 빈약하고 파르라한 '초라'를 촛불로 밀어올린다.


양말을 벗은 발등에 떨어지는 빛. 빛의 오락가락 헤매임과 쑤석거림과 욱신함.


빛의 까막눈이 되어 이 부박한 생활에서 어떻게든 잘못된 '선'을 건축하고 싶지 않건만, 소설가 정지돈은 말한다. 세상은 귄터 안더스Gunther anders가 쓴, 랩으로 포장해 뜯어보지 못하게 싼 책 '몰루시아의 카타콤' 같아라. 인도네시아 환상의 섬 몰루시아 여행이라고 겉포장하지만 기실은 가상의 국가 몰루시아에서 벌어지는 어떤 혁명적인 죄수의 얘기.


내가 걸어왔던 길 아래에서 오동나무는 어떤 공여물처럼 빛의 등롱을 걸어놓는다. 환한 야외에서 어두컴컴한 실내를 들어섰을 때 들이닥친 맹목처럼, 내가 이렇게 저렇게 그었을 '선'이 그곳에 가득하다. 그 선에 걸려 무릎이 깨지고 어깨골이 패인 채, '내가 싸우듯이' 길은 패배자의 눈을 뜨고 소스라친다.


양말은 더 이상 맨발을 감싸는 천조각만은 아니다. 길이 우리를 고정화하려 들때, 그것으로부터 저항하고 희소화하려는 양말은 동물적이다. 양말양말양말양말, 덤불에 뿔을 걸고 닳고 해진 발굽으로 걸어왔던 세상의 모든 환멸과 오류와 탈락과 실신의 길. 5월은 5월의 까슬거리는 양말을 벗게 해. 털퍽대며 가던 길을 멈추고 높이 올려다 보게 해. 맨발과 혼자말을 하고 빛의 반추동물이 되게 해. 저항하게 해.


가끔은 내가 긋는 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검침원처럼 나의 조도를 따져보는 말없이 우아한 결벽.


#5월#오동#정지돈#내가싸우듯이#양말#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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