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멍 시인

-세미의 엽서

by 시인 이문숙

한 명의 독자라도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원고 파일이 깨지고 날라간 경험이 있는 나에겐 브런치가 좋은 저장 공간이기도 했다. 아무데나 앉아서 즉각적으로 수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브런치북은 바로 써낸 글과 어울리는 좋아하는 그림을 어려운 편집 없이 삽입하기도 좋았다. 그렇게 브런치가 마구마구 좋았다. 청탁이 안 와도 뭔가 쓰기만 하면, 바로바로 발행할 수 있는 ‘오로지’의 기쁨.


이제는 브런치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근데 떠나려하면 누군가 좋아요 한다. 아름다운 올무 같다. 못 떠난다. 마치 콜론이 못 된 세미콜론 같다. 글의 호색한 같다.


그런데 세미semi야, 왜 나를 붙잡는 거니. 포박하니.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글은 써서 뭐하냐에 대한 거다. 유명 작가를 자꾸 유멍 작가로 타이포typo한다. 무명 시인을 무멍 시인으로 잘못 타이핑하는 나란 사람, 여자 무헤르. 극사실주의 아닌 극내성성. 유사자폐. 여자의 ‘무멍성’.


먼곳으로부터 엽서 하나 왔다. 부호 하나 찍혀 있었다. ; 세미콜론. 그녀가 기르던 고양이가 코기토 아니고 ‘세미semi’였던가.


횡단보도에 서 있다. 붉은 신호등으로도 부족했던 걸까. 어떤 마음이 바닥에 다시 붉은 조명을 심어놔야 했을까.


늘 가로지르는 기분이야. 파란 불이 들어오기 전, 신호등 숫자가 90에서 58로 바뀔 때야. 어깨에 누가 손을 얹는 기척.


{58년생 론 뮤익Ron Mueck. 세계행복지수 58위. 프리저브드 수국 블루라이트blue light 58 송이. 특수 약품 처리된 가공화이다. 탈수 탈색 착색 건조를 반복해야 한다. 오랫공안 보존하려면 처음부터 적합한 품종의 상처 없는 꽃을 골라내야 한다. 58개 가화. 꽃가루 알러지에 민감한 병실에도 꽂고 즐길 수 있다. 착색된 가공화로 천일화로 불리기도 한다. 보기만 해도 이염되는 쾌락을 멈추지 못한다.}


돌아보면 세미야. 중앙을 놓친 ‘부차적인 가쟁이’의 시간이, 그렇게 불릴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어깨를 탁 친 거야.


그러나 세미야, 더 이상 조바심을 포옹하지 마. 삶의 일 분 일 초가 챙 없는 모자를 닮아 좀 부족한 거 같지. 그래도 용인할게. 수줍고 부차적인 모든 것들도 극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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