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야 무슨 색 좋아해
모기마저 나를 괴롭히는구나. 모기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노란색 테두리가 둘러진 카페 가면. 개장 전 노랑 에이프런 두른 여자가 에프킬러를 뿌린다. 벽체 틈에. 주문대 사이 구석구석.
Every nook and cranny. Nook. 그 카페에는 눅이라는 영어 아래 ‘골방’이라고 작게 써 있다. 눅, 골방. 골방에서 정신이 골병든 나. 언제 골방주의자 연합이라는 깃발 들고 집회에 나가면. 골방에서 나와 모일 사람. 손들어 주세요.
모기는 해충이면서 아닌 척 실컷 피 빨고 몸이 무거워 벽에 은둔자처럼 붙어있다. 당분간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금욕주의자. 그냥 시늉일까. 자연일까. 모기의 정치색일까.
나는 내 장례식 드레스 코드로 에그 쉘. 달걀 껍질 빛보다 밝은 노랑으로 정했는데. 혹시 세상의 모든 모기가 참석하는 게 아닐까.
실컷 추모객의 피를 빤 모기들은 왱왱대지도 않고 조용하겠네. 나쁘지 않네 않아. 벅벅 긁어대는 ‘존재의 가려움’들과 아주 기막히게 조용한 장례식.
음악은 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 거울. 에릭 사티 벡사시옹. 지루하게 내가 살아온 나이만큼 반복하며.
음식은 뭐로 할지 모르겠다. 모기들이 좋아하는 노란 색 커리. 커리에는 개성이 고향인 엄마가 좋아하던 고수 잎 장식. 그리고 좋아하던 음료 짜이. 여름에는 아주 차게 심장이 식을 만큼. 겨울에는 아주 뜨겁게. 혀가 익을 만큼 입천장이 훌러덩 할 만큼.
노란 장미 댄싱걸을 테이블마다 딱 한 송이씩. 곧은 종아리가 펼쳐진 노란 치마폭 사이 살짝 보이는. 고만큼만 벌어진 장미 잎 속. 오, 작은 골방, 거기에도 눅이 있네.
스크린을 띄운다면 시는 앵무는 노란 앵무. 정발산역 커다란 유리 박스 속. 누가 이걸 길렀을까. 앵무에 대한 시. ‘선글라스를 낀 앵무’가 내 생애만큼 벡사시옹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는 모두 파란 색 선글라스를 끼면 좋겠어. 그 모습 모기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눈도 어떻게 보면 작은 골방 눅.
시가 흘러가면 지하철 바퀴 굴러가는 소리. 단조로운 굉음. 그 벡사시옹. 배경음악으로 쓰면 좋겠어.
‘인생의 굴레, 곤궁, 실패, 근심.’ 이 미천한 아전의 길. 이 영문 모르는 길 위의 슬픔. Le mal du pays. 질병의 통역사. 이 영원한 피랍의 길.
죽어 핏줄이 텅 비면 몸은 가볍겠지. 그 뒤 또 우리는 어떤 피랍의 길을 갈까.
나는 딸에게 남편에게 늘 내가 산책삼아 가는 내가 묻힐 미래의 골방을 알려줬다. 거기 천둥과 벼락 이겨내고 살아난 나무, 상수리 나무 있잖아. 나의 엘론 그 아래 한 숟갈만 딱 한 숟갈만.
그 한 숟갈의 골방 눅. 지나갈 때 노란 장미 댄싱걸 딱 한 송이만. 노랑 거면 돼. 애기똥풀두 좋아. 겨울에는 노랑 태양 빛 딱 한 줌만 들게 해줘. 잘 부탁할게.
*선글라스를 낀 앵무
이문숙
앵무를 보러 간다
지하철 유리장에 사는
*인생의 굴레와 곤궁과 실패, 걱정과 근심,
이 미천한 아전의 길을 모르는 앵무를 보러
죽은 나뭇가지 한 자락에 감아 올린 발가락
물 한 종지와 좁쌀 한 그릇 지하철이 우르릉 지나가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쯧쯧 첫첫 혀를 차는
노란 깃털에 푸른 기운
파란 선글라스를 끼고 한 상 가득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면
상한 듯 푸릇푸릇 싹 입맛이 가신다는데
찰랑한 물 한 종지는 늘 그대로이고
낟알 좁쌀알은 부서지고
쯧쯧 첫첫 상인은 그 앞으로 무작정 상인의 길을 가고
피랍자는 피랍의 길을 가고
앵무는 앵무의 길을 가서
온 세상이 푸른 기운에 뒤덮힌다
앵무는 죽은 나뭇가지에 발을 걸치고
멀리서 밀려오는 막연한 진동음을 듣는다
그때는 거친 회오리도 같이 솟구쳐서
쯧쯧 첫첫 지하철 바퀴에 몸을 던지고도 싶은
앵무는 노란 앵무
세상은 진기한 음식으로 그득하고
냉철한 지하철은 여전히 인간을 실어 나르고
이 영원한 피랍의 길
먹이를 갈구하지 않는 앵무는 비썩 야위어서
*이규보의 ‘꿈에서 본 슬픔'에서
(론 뮤익Ron Mueck 58년생. 내 나이네. 관람 중 할머니 두 분. 해골 보며 얘기한다. 이빨 봐. 얘는 좀 젊어 죽었네. 쟤는 우리들 같아. 쟤는 골다공이야. 우리보다 어린 것 같은데. 그래그래. 호호홋호호. 깔깔 웃는다.)
*벡사시옹, 프랑스어로 '짜증, 고통'이라는 뜻이다. 840번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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