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옷
요즘 매일 거의 한 번 지하철을 탄다. 목적지는 없다.
직장 다닐 때는 지하철이 끔찍했다. 특히 출근 시간. 지하철은 타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그 사람의 비단허물, 옷에게도 지옥이다.
나는 여름 옷들을 좋아한다. 짜거나 직조된 섬유의 결 그대로 드러나는 옷들. 매끈하지 않고 투박한 짜임새가 보이는 옷들. 어디에 걸리면 항거도 없이 구멍이 나거나 슬슬 실 풀리는 옷들.
여름용 아끼는 니트가 어디선가 뜯긴다. 햇빛 수집광인 은실이 섞인 조끼. 사람들에게 낑겨 서있다가 잘 들고 있던 좋아하는 비스코스 니트를 잃어버린다. 한참 뒤에나 스르르 팔에서 미끄러진 어떤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러면 며칠을 끙끙 앓으면서 머릿속 분실지도를 짜보곤 한다.
여름 지하철 덩컹덩컹대는 리듬에 아리아나 사발의 노래처럼 흔들리면서. 아쉽지만 옷과의 작별 의식을 한다. 그냥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 발싸개로라도 좋으니 그 효용에 맞게 잘 쓰여지길.
엄마가 꼼짝없이 침상에 누워 아플 때 엄마를 깨끗이 닦이고 씻기라고 순면 짜투리 조각조각을 모아준 친구들처럼.
오늘 지하철을 기다리다 곱게 풀을 먹이고 다림질해 입은 할머니의 옷을 본다. 할머니는 이걸 손수 하신다고 한다. 등이 펑 젖을 정도로 고단한 이 일을 하면 오히려 개운하다 하신다.
흰 저고리 물빛 치마, 바람과 빛이 투과하는 여름 옷은 호야킨 소로야의 해변 여자들 드레스보다 풍신하니 멋지다. 할머니 친구가 쳐다보는 나에게 말을 붙인다. 87세요. 내년이면 미수.
나는 속으로 말한다. 할머니 그옷 나중에 저 한 번 입게 해주세요. 답은 안했지만, 모자와 신발까지 갖춰입은 할머니가 웃으신다.
저 여름 옷처럼 ‘빳빳하고 간소한’ 미의 그물망 지도가 있다면 거기 갇혀도 좋을 것 같다. 잉걸 숯다리미와 인두. 다듬이와 오리나무 방망이. 그 옷 손질에 쓰이는 도구들에 각기 다른 역할이 있다면. 나는 인두나 다듬이돌에 좀 가까울 것 같다. 선과 면이 좀 작은 수동적인 사람.
잘 지내고 있지. 잃어버린 물빛 니트가 생각난다. 무릎에 잘 놓아두었다가, 급하게 내리다 잃어버린. 쓰레기로 덮인 어느 아프리카 강변을 뒤덮지 말고 누군가 야위고 한적한 어깨를 덮어주길.
할머니는 다음 역에서 내리며 모르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지하철을 타면 여자들의 여름 옷들의 쇼윈도우, 색깔들의 호사를 만끽한다.
약냉방칸, 맞은편 앉은 수녀 한 분의 하얀 머리두르개도 한 번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차림이다. 가만히 그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목례하며, 깨끗한 존경을 그분의 회색 옷에 바친다.
다른 얘기지만, 내 세례명 에우제니아는 남장수녀 수도원장의 이름에서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는 수도원장이 될 수 없던 시대. 에우제니아는 한 수녀의 도움으로 매일 수염을 달고 남장을 해야했다. 여름 아주 이른 새벽. 남보다 훨씬 꼭두에 일어나서.
약냉방칸에는 여자와 어린이들이 유난히 더 많다. 맞은편 좌석에 젊은 엄마랑 남매가 있다. 누나 원피스에는 각종 열대과일들. 남동생 웃옷에는 색색 요트들. 바탕이 모두 파란 물빛이다.
곧 수색역이다. 내가 좋아했던 역 이름들. 수색, 강매, 화전, 곡산, 운정, 월롱.
상암 미디어시티로 넘어가는 지하도를 걸어간다. 철로 아래다. 지루하고 길다. 숨이 막히고 덥다. 끝을 모르겠다.
근데 이게 뭐지? 어디선가 물소리가 또랑대며 난다. 뭘까, 이 소리는. 누가 음향장치를 달아놨을까.
지하도 끝에 이르니 할머니 한 분이 배수철망을 걷고 물을 받는다. 이미 여러 개 페트병에 물이 담겨 있다. 물이 좋다면서 아까워서 받는단다. 아욱밭에라도 주려고. 정말 물이 많고 맑다.
예전에는 샘이 우물이 냇물이 있었겠지. 수색, 물빛. 그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겠지. 아욱밭을 에둘러 접시꽃들도 있다.
접시꽃들의 여름 옷차림도 좋다. 미색, 분홍, 자주, 남파랑. 잎에는 미농지처럼 얇고 가벼운 주름들이 있다. 여름은 가슬가슬하다.
#지하철여름나기#더위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