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 거북등딱지, 토슈즈

-한국무용이라구 다 덩실덩실 아냐

by 시인 이문숙

홍대 무용전용 포스트 극장이다. 지하 B1으로 내려가는 계단, 무용단 창무 포스터가 있다. 다섯 편의 공연이 올려진다.


두 번째다. 공연자는 두 명이다. 조카 채영과 친구. 의상은 흰 머릿수건과 잠뱅이. ‘Jansport’ 파란 백팩은 왜 등에 메었을까.


엎드려 시작한다. 최소의 동작. 깨끗하고 절제된 손사위. 차츰차츰 동작이 풍부해진다. 백팩의 끈을 벗었다 풀었다 한다.


그 끈은 전통 한국무용에서 구현되는 옷고름이나 손에 쥔 부채, 천 자락과 같은 여러 가지 동요를 만들어낸다. 다채로운 끈의 언어, 작화술.


공연이 끝나고 나는 말한다. 한 편의 여름 애니를 본 것 같아. 처음에는 두 명의 걸망 맨 동자승. 노스님 죽비 같은 거 무서워하지 않고 요리조리 말썽하는 것 같아. 노스님 경전에 살짝 송충이 같은 거 끼워놓고 저희끼리 까륵까르륵. 귀엽다. 정채봉 동화 같애. 나에게 한국무용이란 고작 옛 유물 같은 거.


그래, 언니? 여동생이 말한다. 다행이야. 그나마 채영이가 한 게 단촐하고 신선하네. 매해 작품들이 다 똑같아. 세 번짼가 네 번째 그건 달이야 해야. 춤추면서 이리저리 굴리는 건. 첫 번째 바닥에 은박지 종이 깔아둔 건 연못인가. 근데 아무리 경연이라 해도 팜플렛 하나 없네. 도대체 제목이 뭔지. 엥이, 빤해. 그리구 채영이가 멘 ‘Jansport’ 백팩은 쫌 아니다.


해금주자 조카 세희가 말한다. 엄마, 그것두 몰라. ‘Jansport’ 파란 백팩. 백팩은 거북이등딱지래. 거북이 성장 과정을 표현한 거래. 그만큼 우리가 힘들잖아. 우리가 매일 무거운 거북이등딱지 같은 백팩 메고 공부하고 취준하고. 엄마가 무한경쟁이라는 거 알아. 거북이도 알에서 깨여나 바다로 가는 건 몇 안된다잖아. ‘Jansport’ 파란 백팩. 저거 상징물이야.


동생이 말한다. 그래, 그래두 내가 거북이 등딱지 만들어줄걸. ‘Jansport’ 파란 백팩이라니. 난 공연에서 처음 봤다.


조카가 말한다. ‘Jansport’ 파란 백팩. 나는 그게 한국무용에서 사용되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어. ‘Jansport’ 백팩 회사에 전화하고 싶다. 얘네 스폰서 하라구.


어떤 공연에선 망사 드레스를 자루처럼 뒤집어쓰고 조깅복 차림의 발레니나가 기계적으로 춤을 춘다. 결국 분홍 토슈즈를 이빨로 발기발기 찢었다.


‘Jansport’ 파란 백팩과 토슈즈 찢는 소리가 남았다.


#잔스포츠백팩 #한국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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