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높아 높으면
일요일, 그 물빛 치마 할머니를 어제 또 뵈었다. 같은 역, 비슷한 시간. 같은 의자에 친구랑 앉아계셨다. 반가워서 앞모습을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니 수줍게 그러라고 하셨다.
그 연세에 일요일마다 미아리역에서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환승해서 여기 교회를 오신다고 하신다. 미아리가 재개발되면서 교회가 여기로 이사왔기에 노목사님 따라서.
자세히 보니, 선덕여왕 귀걸이 풍 브로치를 하시고 진주목걸이를 두르셨다. 오랜 애장품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옆에 친구 할머니가 갑자기 잘못한 사람은 누구라도 벌을 받아야지요, 하신다. 요즘 논란이 되는 보석붙이들에 대한 얘기다. 이분은 동묘에서 6호선을 타고 약수역에서 갈아타서 여기 오신단다.
동네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는 두 분. 시장 문방구에서 불이 났는데, 사람들이 만년필 같은 귀중품만 골라 다 털어갔다고 한다. 그거랑 지금 일이 똑같다고.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교회 다니는 두 할머니, 믿음은 이런 거다라고 하시는 듯 단호하게.
(지난 번 불광역 교회 다녀오신다는 노약자석 할머니 두 분은 폭우나 지진, 자연재해 같은 게 북한에서 일어나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는 놀라 두 분의 고운 옷차림을 본 적 있다.)
‘심판이 도적처럼 오리니’ 전단지가 벤치에 철커덕 붙어있다. 도적이라니. 거기 앉아있던 아이가 도적이 뭐야. 엄마에게 묻는다. 도적.
주역역 앞에선 동성애는 죄, 라고 핸드마이크 든 우아한 플리츠 입은 여자가 나즉나즉 떠든다. 그 여자 왕 브로치가 가슴에서 빛난다.
뾰족해진 나는 그 여자에게 묻는다. 아침부터 귀가 아프네요. 허가 받고 하시는 건가요. 여자는 뭐 저런 게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쏴본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집안일이나 잘하세요. 물빛 치마 같은 거나 다리고 그러세요.
물빛 치마 할머니는 나, 제주도 여행 아들이랑 갔는데. 그때두 일본에서 온 여행객들이 좋다구. 사진 찍어두 되냐구 그랬어. 그러라구 그랬지. 나 국위 선양두 했어. 국격을 높였지.
요즘은 웬지 부끄럽다구 하셨다. 먼저 가신 영감님이 사줬다는 브로치를 만지작 하시면서.
#종교개혁 #교회가는길#자존감높은할머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