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있어요
고요할 ‘정靜’ 하면 손가락이 있어요. 무슨 헛헛헛헛헛휏징이냐구요.
그러니까 79년 대학교 3학년때, 시창작개론을 미당에게 들었다. 아마도 기억이 맞는다면 Y시인과 함께.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떨렸다. 시인은 손가락의 마술사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이 대학을 선망했다.
그는 강의 내내 끊임없이 무슨 말을 했지만, 아무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허공을 긁거나, 휘휘 내저어, 자신이 내뱉은 말을 그가 손가락으로 파낸 구덩이에 묻는 것 같았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늘 허전했다. 어떤 다른 세계에 그의 손가락과 다녀온 느낌이었다. 허전함은 아무것도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자신을 조롱하는 것으로 늘 마무리되었다. 그는 나와 다른 딴 세상의 사람이었던 것이었을까.
마치 사자를 만났을 때, 벗은 윗도리를 팔이 끊어지도록 돌려 간신히 죽음의 공포를 넘긴 듯한, 거기 늘 빙빙 돌고 있는 허공처럼 그의 말은 맴돌다가, 그 말조차 그의 손가락의 현란한 춤에 묻혔다.
그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우리의 간절한 눈빛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삶의 얘기같은 걸 같이 나눠본 적도 없다.
시를 쓰겠다는, 반쯤은 시인이라 생각했던 나는, 시창작개론에서 최하의 점수를 그야말로 말 그대로 획득했다.
다음 해 80년 1학기는 대학 문이 폐쇄되었다. 대학의 여학생 잡지 '보리수' 예비 편집장이었던 나 역시 모든 것으로부터 폐간당했다.
나는 경의선 기차통학을 하면서, 학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하던 인교 언니에게, 미당의 다른 이름이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라는 걸 처음 들었다.
시즈오, 靜雄. 이름의 운명. 고요할 '정'자가 그때처럼 싫어진 적이 있을까.
시를 쓰겠다고 안간힘하던 시골촌뜨기였던 나는 다시 그가 만들어낸 허공에, 덜커덕 영구적으로 갇혀버렸다.
그 이후, 나는 시에게 걸었던 어떤 막연했던 기대와 환상을 버렸던 같다. 한번도 학생들의 눈빛을 소중히 '간수'해주지 않던 미당의 그 탁월하다는 시들이 더이상 간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직도 시를 붙들고 끙끙대고 있다. 시가 뭐라구? 그래두 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관여한다. 끙끙대며 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