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있죠
회색 부직포 슬리퍼 있다
천장까지 닿는 나무 있다
더 이상 뻗을 데 없으니 수형 기울어진다
10여년째 분갈이 못해준 나무
잎 무려 여섯이 한 쌍이다
소파 위 눈썹 찌푸린 사자 캐릭터 쿠션 있다
벽에는 구덩이 빠진 양 지켜 보는
나무 세밀화 있다
오늘은 나무를 그릴 거예요
떠오르는 대로 그냥
그 물가 나무 그린다
축축 늘어진 가지
비틀려있는 둥치
번개 맞은 자국
나무에 대해 말해봐요
타닥타닥 받아적는 손가락 있다
다섯 손가락
아니 여섯 손가락
잎 여섯 한 쌍인 나무를
올 때마다 보았다
이건 꽃인가요
아니 옆 나무에서 날아와 얹힌 거예요
아, 근데 나무가 왜 이렇게 작죠
그나마 뿌리가 있어서
왜 꽃은 없어요
꽃은 거의 구성이 똑같은데
꽃잎 꽃심 꽃술 이렇게
잎사귀 잎맥은 다 달라서요
이 번개 자국은 뭐예요
이 나무가 몇 해 전 번개를 맞았어요
시커멓게 타서 죽어갔어요
매일매일 거기 갔어요
사진을 찍어 기록했어요
수천 장 수만 컷
보도블록 금 안 밟으려고 피해 간 적 있는 당신
현악기 몸통이 꽂힌 칼처럼 보인다던 그녀
싱크대엔 물방울 얼룩 말라 있다
쓴 적 오래된 솔 세 개
문 손잡이에 매달려 있다
가느다랗고 긴 솔 하나
원반 도너츠 모양 둘
아니 그건 세밀화 속 양 발목
걸린 올무
그렇게도 보인다
구멍 술술 뚫린
닳아버린 망수세미 셋
아 나무가 그렇게 살아난 거네요
한 컷 수만 컷 셔터 소리
당신은 유사자폐두
더구나 자폐는 아니어요
자기애성 성격장애두 아니구요
누가 물으면
설명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어요
한 마디만 하세요
물 속에 쓰지 않아 마른 솔 셋 넣어
휘젓는다
그 물 받아 나무에게 준다
이 대추야자는 극 굴광성이라
자꾸 한 쪽으로 뻗어간다
액자 속 구덩이 빠진 양에게
이 가지 잡고 거기서 나와 그러듯
지켜보던 사자 지루해하다가
그만 자버린다
소파에 앉은 자리 잠시 꺼졌다
도로록 올라온다
소파의 솜은 자기형상을 기억하는 것 같다
대추야자 역시 열사 모래알갱이에서 올라오는 빛과 물을 기억하는 것 같다
잎 여섯 한 쌍 나무는 사실 홍콩야자이다.
모든 게 하나씩 틀리는 게
오히려 자기를 확장하는 것 같다
형상기억합금처럼
귀가 여섯 개 달린 나무 형상
그 전문가처럼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두 보도블록 금 안 밟으려고 한 적 있어요
왜 없어요
당연히 있죠
근데 저 나무
천장을 뚫을 것 같아요
*박노해 ‘산빛’ 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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