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아니고 ‘추움’
가지 펼침이 조직적으로 아름답다. 턱 번쩍 들고 나무 보며 지척지척 걷다 헛딛어 넘어진다. 나무의 코리오그래피choreography. 나무들 독립적 띄엄띄엄 사춘기적 횡보. 변모를 꿈꾸는 지척거림이 이런 것일까.
이런 행운이 있다. 사무실, 중요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진척이 없고 곧 결렬될 것 같다. 가끔 사무실 창을 넘나드는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 협상자의 무릎 위로 뛰어오른다. 고양이가 어떤 언어로 중재했는지 결렬을 앞둔 협상은 극적으로 성사된다. 이후 고양이는 그 사무실의 직원으로 고용된다.
순간의 ‘뛰어오름’, 빈자리를 알아보고 뛰어오르는 탄성. 나무는 이 추위의 내적 열도를 햇빛 속에 탄츠 테아터한다.
어제 5시 동대문체육관에서 대절버스 타고 난지도를 지날 때 지는 태양은 붉은 총구 같았다. 그 빛깔도 기이했다. 뒤늦게 가지의 탄성을 찾은 나무들이 빼액 소리질렀다. 저 보세요. 태양이 무슨 발광체 같아요.
뒤늦게 배우는 춤. 춤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추움’. 그 ‘추움’ 속에서 몸의 일조량을 발견하고 뻗어나간다. 완주의 마지막 곡 ‘Head over feet’처럼 고광 산딸 때죽나무 가지 펼침. 깨끗한 고양. 끝이 뭔지 모르는 ‘벌어짐’.
그 나무 아래 벚꽃이 해사하게 피면 모든 살해의 욕망도 시들해진다는 한 명의 산적처럼 나무를 올려다 보는 고양이들이 있다. 야, 산적아. 오늘은 나뭇가지가 좋아 거기 두 발 모으고 있지. 그렇지. 직박구리가 충치 앓는 소리 낼 때.
한눈을 판다. 그러다가 도랑에 빠진다. 유리 파편에 찔린 검지에서 상한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데, 나무 가지 보다가 또 넘어진다. 그런 나를 고양이 ‘산적’이 말끄라미 본다.
자전거 타고 가던 할머니 한 분이 자명종을 울리며 괜찮아요 한다. 공벌레처럼 아름다운 구부러진 등이 가지를 내밀어 일으켜준다. 날마다 횡보하는 어느 한 여자를. 기계음 아닌 여윈 손가락으로 직접 움직여 내는 자전거 타종과 함께.
카페 뮐러, 의자들 사이를 눈 감고 추는 ‘추움’. 의자들이 넘어지고 고꾸라진다. 그때 몸은 어떤 식으로든 ‘추움’의 형식을 만든다. 꼭 춤이 아니더라도.
슬픔 속에도 이런 탄츠 테아터가 있다. 슬픔 안에도 ‘가지 펼침’ 탄성이 있다. 그래서 기어나오고 넘어진다. 넘어지고 일어선다. 그리고 몸에서 여기저기 발아하는 눈으로 본다. 춤이 ‘추움’으로 발화되며 작고 부드러운 ‘파손’이 일어난다.
남의 음식을 빼앗을 때 고양이는 산적이구요. 저렇게 나무 아래 고요하게 있으면 고양이는 턱시도예요. 겨울 나무들은 가지 만으로도 산적이든 턱시도든 그 곁에 있어 주어요.
신의 얼굴을 페스트처럼 파손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그들 곁에서 걷고 있다.
-필립 자코뜨 ‘부재의 형상이 있는 풍경’
붉은 총구 같던 어제 본 태양이 오늘은 빛과 소리의 음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질 때와 펼쳐질 때 다 다르고 획기적이다. 공벌레처럼 둥근 아름다운 할머니의 등. 사뿐 안장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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