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편지배송 안한대

-맨발가락흰백합가위

by 시인 이문숙

덴마크는 편지 배송 업무를 중단한다 한다. 편지 배송이 90% 정도 사라졌기 때문. 우체국이 결국 없어진다는 거겠지.


파블로 네루다와 배달부의 대화 같은 건 사라지겠지. 소식 끝에 J는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찾아본다.


입구 우체함에 꽂힌 잡지. 다담마트 전단지. 판공성사 표 담긴 보랏빛 봉투. 샤시 교체 홍보지. 이런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편지 같은 건 정말 안 보여.


이건 뭐지. 엄마를 깨우는 사람들. 엄깨 학원 홍보 책자. 엄마가 깨어나야 애들이 깨어나요. 이 학원 이름 깬다. 정말 깬다. 박스에서 이런 것들 꺼내며 들려오는 웃음 소리도 곧 사라지겠네.


겨울맞이 코털갈이 신청지. 코털갈이가 뭐야. 아 그거 샤시 한풍 막이 털을 재밌게 표현한 거겠지.


우편배달박스도 곧 사라지겠네. 우편배달부도 빨간 우체동도. 다담마트 전단지 꺼내며 제주 무가 나왔네. 오늘 저녁은 소고기 하박하박 뭇국. 어느날 다급하게 타전한 맨발가락백합가위. 이 편지는 반송되고 말았지만. 정말 가야할 편지는.


코로나 시절, 주민 참여가 시작된 아파트에선 결국 대립과 갈등이 주민단체 채팅방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입대의가 뭔지 장충금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 장충이라니. 이건 무슨 벌레 이름이라니. 모여 킥킥 웃으면서.


새로 이사온 젊은 부부들 중심으로 몰랐던 정보를 교환하면서. 어느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때 이런 편지가 올라왔다.


R께


R이라고 부르지도 말라는데 J는 그래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마리아의 왕관 말고 맨발가락을 보고 왔어요. 고부라진 발가락이 차가운 땅을 딛고 있어요.


어제 J 인생 처음 소환장을 받고 경찰에 다녀왔어요. 왜 경찰에 가야 하나요. 왜 그 한밤 조용히 잠든 집에 찾아오셨나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도 사태도 없었을 텐데요.


신부님께 고백성사까지 하셨다는데 신부님이 대모가 대녀를 엄벌하라 하시던가요. 고소해도 된다고 하시던가요.


J가 대모를 해치려고 하는 인격의 소유자에 불과해 보이셨나요. 아무리 죄가 있더라도 돌로 내치지 말라고 J는 성모님께 배웠습니다.


R도 J도 열심히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왜 다퉈야 하나요. 누구든 업자에게 돈을 받았거나 이상한 소문 퍼트리는 특정한 사람이 벌을 받아야지요.


J는 R 댁을 다섯 번이나 다녀왔어요. 직접 만나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저는 L에게 고소니 뭐니 상상도 못했던 그런 일하면 안된다고 애초부터 만류했어요.


R도 돈에 관한 그 소문 어디서 들었으리라고 J는 생각했으니까요. J도 최근까지 최초의 발설자 이름을 밝히지 못하지만 누가 말해줘 알고 있거든요. 공동주택 특정한 몇 사람들 때문에 왜 주민들이 힘들어야 하는지요.


누구든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대표자 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청렴서약서 쓰는 걸 강조한 거구요.


근래에 R 남편분께서도 B가 돈 받았다라고 하셨다고 들은 바 있습니다. 다른 특정인도 소문을 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선관위원회 B 허위이력 검증 부분도 마찬가지고요. 걱정의 와중에 R이 J 집을 방문하신 겁니다. 그래서 금품 운운하는 거에 예민하게 들은 거구요.


고소 운운해도 주민들은 더이상 우리 문제는 내부에서 대화로 풀어야지 지난 번처럼 고소 고발 남발해서는 안된다구 늘 만류합니다.


그런 J에게 대화를 거부하시니 경찰이 진술서 써야한대서 하고 왔어요. 공권력이 무섭더라구요. 왜 J가 경찰에서 진술서를 써야 하나요. 왜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다퉈야 하나요. 나쁜 사람들은 따로 존재하는데요.


경찰에 가시면 진술서 읽어보시고 이제라도 J 마음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30여장 조서에 마지막 빨간 인주 손도장 찍으며 누가 범죄자인가 하며 엄청 울었습니다. J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걸 인지하고 계시나요.


J는 R 남편이 두려워졌습니다. R 부부처럼 성당에 봉헌하시는 분들을 위해 늘 기도드리고 감사드렸습니다.


R 남편이 J에게 그러시더라고요. 명분도 없이 대가리를 굴려 거짓말하고 대모 뒷통수를 치냐구요. 대가리 속에 거짓이나 지으면서요. 그게 작가냐구요. R도 심려가 크시지만 J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대가리에 거짓이나 지어내는 게.


반대로 생각하면 대모가 고소까지 하면서 대녀 뒷통수를 친다는 생각은 안하시나요. 거기에 신은 어디에 존재하시나요. 대모가 대녀를요.


J 생애에서 누가 J를 고소할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 대녀가 대모를 치겠어요. 올바르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는 R이 동대표로 나와서 늘 다행이라고 J도 권유했다고 주민들에게 얘기합니다.


이제는 이편 저편 가를 일 없이 새 입대의에서 잘 협의해 엘베라는 최대사업도 잘해야 한다고요. 과거 문제로 진흙탕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고요.


이번 고소 사건으로 조용히 살아온 J가 범죄자가 되면 어떤 공모전에 작품을 낼 수도 없습니다. 직장 3년차 아들은 가을에 이직을 하는데 가족 신원조회에 부당한 점수를 받습니다. 어렵게 유학까지 다녀온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R은 이런 거 생각하시고 고소하셨습니까. 아직 남편에게는 수치스러워 의논을 못하고 있어요.


J가 무슨 목적이 있어 대모의 명예를 훼손합니까. 왜 어린 경찰의 공권력이 이런 사건에 배당되어야 합니까. 취조하던 경찰도 J를 위로하더라구요. 처음에는 무섭게 딱딱대더니 이건 사건 성립도 안 될 것 같다구요.


늘 금품 논란의 중심이 되는 B에 대해 주민들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문의 진원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아파트너 전자투표 같은 거 하나 하는데 왜 2년 반이 걸렸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다른 단지 엘베, 통합경비, 도색, 보도 정비, 금연아파트 지정 다할 때 왜 전입대의는 주민들 의견에 반대만 하셨나요.


아파트 문제는 외면하고 그들 금품 수수 문제를 자체 조사 안하고 싸우는 모습에 주민들은 집단우울 증세를 겪었어요. 그럴 때 배후에서 지켜만 보셨나요. 왜 아파트 원로들은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지 않았나요.


심지어 인신공격에 극단적 모독에도 J는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고소하는 거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대녀가 이렇게 2년 반 힘들 때 대모는 뒤에서 뭐하셨나요.


왜 나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다퉈야 하나요.


성모님 높으신 왕관보다 맨발을 사랑하는 J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습니까.


이 편지가 서랍 속에 남아있다. 편지로 부쳤으나 반송된 편지. 사건 성립이 안된다는 경찰의 통지문을 받은 뒤에도 길에서 만나면 여름에는 J에게 들고가던 부채를 펼쳐 위협하거나 겨울이면 가래침 끓어올리며 윽박지른다.


그런 날들 꿈을 꿨다. 한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가위를 줍고 있다. 한여자가 그 가윌 재빨리 빼앗는다. 그사람이 그 가위로 누군가를 찌르려고 하니까.


그 가위에서 마리아 긴 옷아래 살짝 보이는 맨발가락이 하나 둘 피어난다. 이 맨발가락 가위로 J는 자신을 찌른다. 사실은 J가 그 가위로 그사람을 찔러야 하는데.


맨발가락 가위가 백합 모양으로 벌어진다. 가끔 가보는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먼저 검은색을 칠해놓고 그 검은색을 벗겨내며 색을 칠했다 한다. 검은색을 벗겨내며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하양. 그 화려한 빛깔에 가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벗겨낸 검은색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빛의 성경이라는 창 속 장미 잎 물고기. 배가 한 번 출렁인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가득한 물고기. 다 버리고 온다. 올려보는 머리 위 왕관보다 고개 숙여보는 맨발가락이 왜 더 좋아.


이 사건 이후 조용한 반란꾼 J는 여교장 R의 부당한 명령에 교장실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지. 직위해제도 당하고 결국 인사기록부에 빨간 줄도 있는 J는 잘 참다가 끝에서는. 다른 사람이 명령복종의 의무에 서명할 때도 끝까지 남아있었다지. 교장은 금귀이개를 J에게 선물하기도 했지만. 아니면 아닌 거니까. 맨발가락에서 흰백합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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