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 베짱이가 개미보단 예술적이지요.
우리집 베란다 작은 정원. 왕립 식물원 ‘키 가든Kew garden’보다 소소하지만. 다 하나하나 여기 온 사연 깃든 일명 ‘규 가든kyu garden’이다.
코로나 때 고요하기만 집. 딸이 오당퉁탕하는 동생들 엄마 낳아줘,하며 나를 놀린다. 그래 알았어 동생들 낳아줄게. 몇 명. 한 팔공주하려면 일곱. 알았어. 그렇게 하나둘 들여온 화분들.
매달 3일,8일 일산 오일장 가서 산 로열망고 튤립. 이건 자신의 항렬 ‘규’를 넣어 규로라고 부른다. 규툴이라 부르면 웬지 저 노오란 망고 빛 튤립 툴툴댈 것 같아서.
그래, 우리 규로라 부르자. 와, 규로. 딸이 좋아한다. 내 동생 두루마기 입은 영의정 이름 같다. 이름에두 로얄이 들어가잖아.
호수공원 플라워 마켓에서 데려온 블루라이트 수국. ‘규’ 돌림자 넣어 규수라 하자. 피나타 라벤더는 규라. 호접란 하얀 아마빌리스는 규란. 필레아페페는 규필. 동네 피아노 샘 연숙씨가 삽목해서 분양해준 제라늄은 규제. 규백 규미 규호 등.
아침에 일어나면 규란아 잘 잤어. 언제 꽃 필래. 그러더니 성냥알만한 망울 셋. 와 기적이다. 규란이 정말 우리들 말 알아듣나봐, 엄마 참 이상해. 애들 앞에서 좋은 말만 해야겠다.
아이쿠 규수야, 미안해. 가지 축 처져 있네. 물 줄 때를 놓쳤네. 정말 미안해. 어서 이 물 마시고 일어서. 딸은 선잠 덜 깨고 얘네들부터 챙긴다.
엄마 규라가 꽃 폈어. 얜 따땃한 남프랑스에나 자라는 앤데. 이 추운 일월에 더 잘 자라. 베란다 햇볕 잠깐인데. 월동력 대단해. 가지 흔들어 냄새 맡아봐. 너무 황홀하다.
엄마 ‘배포’ 한 번 크네. 무슨 배짱으로 이래. 이제 동생 그만 낳아줘도 돼. 속 울렁댄다. 매일 동생들에게 인사하기도 벅차다.
하필 폭설이었다. 게다가 혹한이었다. 거리에서 난 목발을 상전처럼 모셔야 했다. 장마철 빗물이 가득 고인 고무장화를 신은 채 침대 위에 누운 느낌이랄까. 네가 총을 쏘았으니 나도 총을 쏠 게 아니라 네가 총을 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배포’, 욕심이랄까-김민정 ‘역지사지’ p. 79
배포 없는 내가 ‘배포’라는 말을 본다. ‘봄과 보임의 흔들림’ 사이. 키 가든 아닌 ‘규 가든’. 얼어버릴까 냉가슴 앓으며. 택배상자 뽁뽁이를 해 들면 벗겨주고 해 꺼지면 덮어주면서.
규란아 얼른 피렴. 규라야. 규제야. 규백이는 아무것두 해준 거 없는데 해마다 나오네. 에밀리 디킨슨이 책갈피로 사용했다는 크로커스. 올해도 와줄 거지.
에밀리의 시 ‘유명fame은 상한 음식fickle food. 겨울 굶주린 까마귀도 거들떠보지 않고 깍ironic caw’ 하며 스쳐가. 이런 ‘배포’ 좋아. 내겐 외다리 소반책상 하나, 무슨 얘기냐구. 내 한쪽 무릎만 있으면 돼. 어디서나 읽고 쓸 수 있어. 크로커스 잎 갈피 없으면 솔 잎 하나. 그거 하나면 족해. 족하다 족해. 근데 이 ‘배포’가 왜 이리 으슬으슬한 거지.
딸이 새벽 출근하다 블랙아이싱에 미끄러져 발목에 금 갔다. 기부스 하고 목발 짚고 출근한다. 깜깜하다. 기부스에 ‘배포’라고 적어본다. 목발하고도 ‘배포’ 좋게 여전히 씩씩싹싹해. 그래, 혹한 이기는 그 씩씩함에서 싹도 잘 움터나올 테지.
목발이 목수국 라임라이트처럼 출근하는 새벽 밝힌다나 뭐라나. 정말 배포가 있다 배포. 욕심보다는 배포. 이건 뱃심. 배짱. 창자gut에서 나오는 힘. 아암, 베짱이가 개미보다는 예술적이지요.
#김민정시인 #역지사지 #난다에세이# #봄과보임사이 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