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몬트주스병 속 박카스병
시장 한쪽이다. 더위에 지쳐 주저앉은 인조가죽 의자. 표피가 녹아 순간 스커트에 아스팔트 스키드마크 같은 걸 남긴다. 털어내보려 치마를 흔들어도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구 속상해. 아끼는 여름 치마인데 버려야 되면 어쩌지. 그냥 갈걸.
그때 옆자리에 털벅 앉은 할머니가 박카스를 내민다. 이게 뭐지. 내가 속상해 보이니 주는 걸까. 외할머니 차부운 여사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할머니는 88세에 집된장 담궈놓고 좀 피곤하네, 하며 낮잠 자다 가셨다.
시장에선 아무거나 받아마시면 안돼. 거기 뭘 탄 거야. 나두 받아마셨다 정신 잃은 사이 손가락에서 금가락지를 빼갔어.
다행히다. 그 할머니 박카스를 나에게 주는 게 아니라 따달라는 거다. 손모가지 힘 없어 그걸 부탁하는 거다.
갑자기 어디선가 들은 친정엄마 사연이 겹쳐진다. 여름 잘 나시라고 그 당시 귀한 델몬트 주스를 사다놓고 왔다. 다음에 가보니 그대로 부엌 한 켠에 있었다 한다.
엄마, 이거 아끼다가 유통기한 다 지났잖아. 딸이 엄마 등을 탁 치며 나무란다. 딸에게 꽃새우 아욱국이라도 끓여 주려고 아욱을 벗기던 엄마의 비쩍 마른 등. 뼈의 등고선이 딸의 때리는 손에 고스란히 옮겨온다.
그거 아낀 거 아냐. 병 뚜껑을 못 따서 그런 거야. 부탁할 사람두 없구.
딸은 엄마 등을 다시 쓸어내린다. 미안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타박부터 했네. 내가 모자라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박카스병이 델몬트 주스 병에 든 러시아 인형 같다. 말을 점점 잃어가는 엄마가 미안해 하는 딸의 마트로시카 같다. 왜 노인을 위한 병뚜껑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박카스를 반쯤 마신 할머니가 내게 마늘바게트를 내민다. 입맛이 없어 샀는데 입이 깔깔해서 못 먹겠다고 주신다. 나는 순간 당황한다. 비닐봉지를 반짝이 끈으로 돌돌 말다가 이걸 여밀 힘조차 없다하신다.
나 모자 벗어두 되지요. 휑한 상고머리 드러난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졌다 한다. 흉하다는 말에 나는 급기야 대답한다. 할머니 두상 너무 예뻐요.
할머니 순간 바닥을 가리킨다. 아니, 여봐요. 저기 봐. 시장에 쥐가 다니네. 배수구에서 나와 뒤룩뒤룩 눈알 굴리는 것 좀 봐. 나보다 낫네. 나 폐암 말기야. 내가 섬망 증상이 있어. 오락가락하지. 시체말로 머리 속에서 쥐들이 왔다갔다 하는 거지. 옛날 방 천장에서 쥐들이 새끼 낳고 거기서 나던 소리가 들려.
뇌, 존재의 반짝이는 둔덕. 세포들의 쥐색 의회. 운동가방 안에 터질 듯 구겨넣은 옷처럼 두개골 안을 가득 채운 자아의 주름진 옷장
-에이미 블룸, 사랑을 담아 p.141
그러면서 그 옛날 검단에서 튤립과 프리지아 농사를 하셨다 한다. 곱게 자란 내가. 중매로 만 평 과수원하는 집에 시집 갔는데. 남편도 명문대 나왔는데. 강의를 하려고 학생 앞에 서면 앞이 캄캄해진다는 거야. 그래서 그거 그만 두고. 검역소 거쳐 그 귀한 튤립을 들여와 농사를 시작한 거지. 그때부터 일꾼들 밥해 먹이고 남대문 꽃시장 수금하러 다니고.
아, 저두 튤립 키워요. 프리지아두요. 베란다 화분에서이긴 하지만. 해마다 뭘 안해주는데도 땅 속에 있다 나오는 게 신기해요.
나는 결국 할머니가 반짝 끈으로 옭매주신 마늘바게트를 받고 말았다. 반쯤 마시다 만 박카스. 그 병을 기여코 지하철역에서 분리하시겠다는 걸 내가 뺏어 가방에 넣었다. 혹시 병 뚜껑에 손 벨까.
그리구 덧붙였다. 할머니, 그거 아세요. 티파니에서 아침 오드리 헵번. 너무 먹을 게 없어서 튤립 구근을 먹으며 버틴 적도 있대요. 아등바등 살아도요. 뇌에서 쥐가 ‘의회’를 열며 신경을 갉작여도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예요.
그러우, 정말 그런 거우. 병 따줘서 정말 고마워. 내 등을 쓸어주신다. 늙은이 구시렁대는 소리도 들어주고.
할머니가 기운이 나셨다며 비칠비칠 일어나 가신다. 남에게 신세 안 지려는 할머니의 아등바등한 모습에 할머니의 ‘성현농장’이 펼쳐졌다. 그래서 검단 일대가 다 튤립 농사를 짓게 되었다우. 다 먹고 살게 되었다우.
훈데르트 바서가 튤립 벌판에서 잠들었듯이. 배수구에서 시궁창 냄새 올라오는 곳에 튤립이 쑤욱 올라왔다. 남편을 ‘디그니타스’로 데려갔던 에이미가 거기 보였다. 할머니가 혜원 뜨개방을 지나가고 있었다. 프리지아 빛 스웨터가 걸려있는 소점포. 할머니들이 등을 구부려 뭔가를 뜨고 있다. 여름 은사금사 모자. 여름 니트. 여름 머플러. 가방.
그 작은 공간에서 여덟 명이 등을 구부리고서. 침묵의 뜨개. 어쩌면 섬망 같은 뜨개. 그 먼곳 스위스에 가지 않아도. 그곳에는 이미 ‘디그니타스’의 존엄이 있었다. 나는 망친 스커트 생각은 세포의 쥐색 ‘의회’에 맡기고 그 대신 은사가 섞인 여름모자의 오톨도톨 촉감을 손바닥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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