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을 본다

-약불, 채소 탑, 저승꽃, 맷돌

by 시인 이문숙

지하철 내려 과일 가게 모퉁이 돌면, 어디선가 기름 냄새. 화원 히아신스보다 백년가게 원조 족발집 냄새보다 강렬해. 지나는 이들 무찔러 버리는 이 냄새.


세이렌의 노래 같을까. 기름통에서 자글자글한 소리. 결국 대왕오징어 튀김에 먼저 끌려. 두 개를 사버렸네. 맷돌로 간 국산 녹두 사러 지하철 타고 예까지 와서 먼저 대왕오징어 튀김이라니.


아르헨티나 탱고 ‘두둑Duduk’ 소리 왜 거기서 들리는 거니. 손발 시리고 아 저 할머니 옛날 털신 사고 싶다. 그걸 마음 댓돌에 올려 놓고 싶다. 그러다 보니 양철 북에 떨어지는 태양 빛. 그 남미 바다를 가로질렀을 오징어에게라도 빌려오고 싶은 게야. 이렇게 바람 차고 쌩쌩한데, 팔월처럼 자글자글 끓는 설 명절 전 전 가게들.


전 가게들만이 아냐. 내가 이 주변 세 학교 순차근무할 때 노점 할머니들 50대였는데. 지금은 팔순 구순이 되어서 한 뼘도 안 되는 노점을 지키고 계셔. 거기서 쪽파 알타리무 까고 다듬어. 그리고 쪼글한 껍질만 남은 손으로 쌓아, 쌓아올려. 이렇게 아름다운 채소 삼층석탑 있을까. 퇴근할 때 쑥호떡 사먹고. 배고플 식구들 위해 옥이네 김밥 사고.


난 울엄마 염복점 표 녹두전 구울 거야. 위풍당당 가서 할머니들만 쳐다보네. 퇴직 없이 매일매일 출근하는 할머니들 부럽다 참말 부러워. 그래 맷돌까지 어디서 들고 왔는지 그걸로 갈고 있는 녹두. 광장시장 녹두전은 거의 기름에 튀기지만. 개성식 전은 들기름 두른 팬에 약불로 구워. 간 녹두 한 국자 두르고. 그 위에 데치지 않은 생숙주, 생강 살짝 씹히게 넣은 간 고기, 쏭쏭 썬 김장 김치, 대파 켜켜 올리고. 다시 한 국자 간 녹두 올려 뚜껑 덮고 뜸들이며 구워. 부치지 않고 구워. 거의 한 장 30여분 걸려. 그 사이 사이 베란다 수선화 올라오는 거 보고 미쓰김라일락 깡마른 잎 따주고. 녹두전 한 번 뒤집어놓고 다시 걸레 빨아 집안 닦고 그 물 받아 베란다 씻고.


여기 진도 대파는 대왕오징어처럼 단이 크고 흙뿌리가 튼실해. 저걸로 대파장해서 녹두전 먹으면 아 맛나겠다. 진도 허백련의 집 먹 향이 나. 거기 흙들은 유난히 빨갛고 빤짝했어. 사납기도 부드럽기도 한 해풍 때문일까.


동그랑땡 팔월 과꽃처럼 핀 커다란 영업용 프라이팬들. 철판들아, 너희는 어디 있다 여기 나왔니. 오색 꼬치 줄기에 핀 망자들을 위해 피는 꽃. 하지만, 공손히 절 드리고 제 끝내면 우리들 산 자들을 위한 화원이기도 해. 야, 맛있겠다. 어서 먹자.


이 길을 따라가면 쭉 꽃밭, 팔월이라 이제는 바래가는, 윤기를 잃은 꽃들, 떨어지기시작한다. 곧 국화가 피겠지. 프랑스에서는 망자들의 꽃. 께름칙해야 할 것 없어. 사실을 말한 거 뿐이니까.

-마가릿 애트우드, ‘지극히’


진달래전도 국화전도 못되는 전들이지만, 앉은뱅이 저울은 너무 바빠. 한 근만 세 근만 달아주세요. 차례차례 몇 개 골라 담으며, 저울에 올려 보는 것도 지나간 한 해 돌아보는 마음이야. 앞으로 올 시간 기다리는 꼬박이 마음이야. 올핸 이렇게 살아봐야지.


그래,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시간들이 수술 암술 구분두 못하는 망설임였을 지 모르지만. 저울은 알지. 잘 알지. 눈금 흔들리다 딱 멈추는 순간. 간 녹두를 담아 저울에 올릴 때, 이상하게 파르르 떨려오는 마음. 저승꽃 핀 할머니 앙상한 손 보는 마음.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약간의 덜고 더하는 마음 털신 댓돌에 올려두고 보는 그 마음. 잘 털벅대고 살아야지.


올해 집 베란다엔 수선화만 다섯 뿌리 오고 히야신스는 안 왔네. 얘들도 해갈이 안식년일까. 이런 순차적으로 오는 마음. 조용히 장전된 피스톨의 마음. 이것두 배워야겠다. 몹시 새롭고 낯선 언어들 볼 때처럼.


꽃을 세세히 설명하는 것도 어찌나 어려운지. 이건 수술stamen, 남자men와는 아무 상관없어. 이건 암술 pistil, 총pistol과는 상관없어

-마가릿 애트우드, ‘지극히’


*두둑Duduk: 아르메니아 민속 관악기.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누에보탱고에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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