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니는 사람들
갱지는 강아지 약어다. 우리 갱지 오늘 착했어요. 아파트 단지 볕 잘 드는 유일한 장소. 할머니들이 상수리 나무 아래 도토리 줍는 곳. 그걸 모으고 말려 야들야들한 묵 쑬 궁리하는 동산. 그걸 혼자 안 먹고 나눠먹는 모습. 보조 보행기에 간장 흰 종지. 젓가락으로 뚝뚝 썬 도토리묵. 이젠 음식 맛두 몰라. 양념두 싫어. 간장이면 최고야.
그 동산. 이제는 갱지들의 애견파티 장소가 되었다. 목사리 풀어놓고 매일 모여 갱지엄마들 떠든다. 얼마나 소란한지 그 동산 옆 정자 아래 두어 개 평상을 철거해 버렸다. 할머니들 옹기종기 모여 싸온 음식 나눠먹고 볕바라기 하는 곳.
물론 갱지 누구나 좋아한다. 귀해 아껴쓰던 종이 그 갱지 만큼. 개성 종묘상 달력 종이 뜯어 깜지했던 시절. 어렸을 때 길렀던 흰 메리. 멀리 발자국 소리 듣기만 해도 계단으로 달려내려오던 쁘띠. 흔들어대는 꼬리가 청어 장수 아들 샤갈. 그 그림 속 일곱 손가락처럼 바지런했다. 다섯 손가락 아닌 일곱 손가락 가진 사람처럼 일해라.
그런데 할머니들도 살고 봐야지. 다리 아파 멀리 갈 수 없는 할머니. 거기 모여 봄에 오손도손 산수유 열매 딴다. 쑥 냉이 캔다. 늦가을 도토리 줍는다. 목련 보고 저 목련 몇 년 더 볼까. 깔깔 웃는다. 형님 내가 먼저 가 기다릴게. 서둘러 오슈. 아이고 내가 먼저 가야지. 손사래 젓는다.
11월 그곳은 색의 향연이다. 노랗게 물든 칠엽수 마로니에. 마로니에 일곱 손가락 잎들은 할머니들에게 금빛 휘광을 둘러준다.
그러다 마로니에 열매 떨군다. 낙엽 주우러 나왔다 낙엽 대신 야, 여기 밤 많아 줍는 유치원 애들. 얘들아 그거 밤 아니다. 큰일 나. 그거 만지면 안돼. 그런 걸 말해줄 수 있는 할머니들.
그 동산 갱지들이 가져갔다. 물론 갱지들이 그런 건 아니다. 유기견 불쌍해 입양한 갱지 엄마들의 일이다. 갱지두 갱지지만 할머니들두 거의 혼자 살아요. 외롭구 시간이 안 가 보료에 누워 자다깨다 혼자 왕왕대는 테레비가 싫어 나온다. 전기 낭비하는 것두 죄유, 죄. 먼 세상 가면 자기가 쓴 물 다 마셔야 한다잖아.
차라리 인간 테레비가 낫다. 서로에게 매일의 화면이 되어주는 각종 할머니들. 예쁜 모자 쓰고 화장도 곱게 하고 나온다. 음식두 하나씩 싸갖고. 말캉 도토리묵 약쑥버무리 알캉하게 찐밤.
갱지와 달리 깜지는 자율학습 시간 종이 새까매지도록 쓰는 공책. 깜깜 종이의 은어다. 그 깜지 쓰기처럼 갱지들은 엄마들 올려다 본다. 간식 받아먹으려 무릎 꿇고 앉는다. 착하지. 짖지 마. 땅 파지 마. 고양이 똥 먹지 마. 거의 금지의 말들이다. 복종의 언어다. 앉아. 앉으면 간식 줄게.
샤갈은 니콜라이 고골 소설 ‘죽은 영혼Les ames mortes’도 판화로 제작했다. 색이 없지만 색이 더 느껴지는 흑백 에칭.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의 영혼을 사서 자신을 지주로 위장한다. 죽은 영혼은 러시아어로 ‘농노’이기도 하다. 청어 장수 아들 샤갈. 놀랍다. 인간의 위선을 이렇게 세세히 보여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동산 너머 분수대 광장 돌며 자전거로 겅중 뛰기 연습하는 질풍노도 남자애들. 안 될 때마다 샤갈 샤갈 한다. 저 남자애들은 샤갈을 알고나 있을까. 한 색판화를 찍으려면 25개 색판을 만들어 겹겹 나눠 찍었다는 일곱 손가락 청어 장수 아들 샤갈. 놀라운 일꾼 샤갈.
마르크 샤갈 전. ‘색체의 마술사’ 판화전을 단체관람했을까. 환상적인 그림들. 날아다니는 사람들. 저 목사리 두르고 유모차 타는 갱지와 달리 인간과 교감하는 자유로운 동물들.
얇은 튜브 고가 자전거 위해 세뱃돈 모았다는 아이들. 분수대 광장 빙빙 돌며 무서운 속도로 돌다가 공중으로 뛰다가 착지한다. 잘 되어도 샤갈. 실패해도 샤갈이다. 왜 샤갈일까.
강아지 신발의 신발. 그 신발일까. 언어순화용 칠판에 적혀있던 그 신발. 신발은 어떤 비속어의 귀여운 버전.
근데 샤갈이라니. 샤갈은 그래. 맞아. 비속어 그 말이구나. 샤갈은 신발의 대체 버전이구나. 비속어라구 안 쓸 이유는 없다. 너무 여기저기 남용된 샤갈의 그림들. 그러나 그의 판화를 보고서 나는 마르크 샤갈이 얼마나 ‘문학적 화가’인가 알게 되었다.
저 애견 동산의 갱지들. 샤갈의 판화 속에 들어오면 더 활발하고 자유로워진다. 입춘 지나도 풀리지 않은 추위. 바람 없으면 햇볕은 더 맑고 깨끗하다. 보조보행기 의자에 앉아 햇볕바라기 하는 할머니들. 샤갈의 그림 속에 들어오면 색체의 향연이다. 특히 털모자들 꽈배기 문양. 색상표 같다.
얼마전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밥을 샀다. 설렁탕이 나오자 밥공기를 흔든다. 나도 같은 동작을 했다. 결속을 위한 공동 언어처럼. 우리는 서로 밥그릇을 들고 함께 흔들었던 사이
-황성희, 인사의 각도
햇볕바라기하던 할머니 한 명. 옛날 도시락을 연다. 갓 쑨 도토리묵 젓가락으로 뚝뚝 끊는다. 종지에 담아온 간장 털어놓는다. 도시락 뚜껑을 덮고 살살 흔든다. 그리고 잡숴봐 한다. 할머니들 립스틱 바른 입술 살폿해진다. 꽈배기 문양 모자 소용돌이한다.
샤갈 그림 속 주방으로 날아가는 남자의 기이하게 비틀린 몸체. 그와 입맞춤하는 여자는 어떤 음식을 만들었을까. 청어 장수 아들과 보석 세공사의 딸. 할머니들의 단촐한 음식 도토리묵 같았을까.
도토리묵은 물과 가루. 7:1이야. 그때 가장 탄력있고 점성 있어. 야들야들하고 쫀득해. 절대 불 앞을 떠나면 안 돼. 잘 저어야 돼. 불 앞에 선 할머니의 구부러진 등. 왜 이리 닮아보일까. 샤갈 그림 날아다니는 사람들 유선형 몸체.
일곱 개 손가락 가진 사람들. 일곱 손가락 잎 밝은 노랑 칠엽수들. 곧 순이 돋아날 것 같아. 같이 밥공기를 흔드는 동료의 ‘공동 언어’처럼. 맑은 볕 속에서 공기가 살살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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