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도 땀을 흘려
가끔 나를 다른 물성으로 바꾸고 싶은 때 있다. 양철로 돌로 나무로 헝겊으로. 플라스틱으로 진흙으로.
공원에는 돌고슴도치 있다. 돌무당벌레 있다. 늘 거기 있다. 밤비니 사슴은 어린이집 간판 속에 있다. 귀 하나가 지워져 떨어져 나가는 그 ‘어느덧’ 시간 속에 있다.
아, 어느덧의 덧. 덧없음. 결핍. 햇덧처럼 조금 주어진 것.
엄마 손 잡고 가던 아이가 손을 뿌리친다. 그 손 돌고슴도치를 쓰다듬는다. 돌무당벌레에게 가 걸터앉는다. 엄마는 아이를 재촉한다.
고슴도치 도발의 가시 감춘다. 무당벌레 점 흩는다. 아이의 등원 거부법이 요렇게 앙큼하다. 간판 속 밤비노두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원두 등원두 싫다. 빨리 가자. 엄마 지각해. 거기에는 더 좋은 게 있어. 고슴도치보다 무당벌레보다.
더 좋은 건 뭘까. 고무 햄스터. 저승사자 인형. 플라스틱 불자동차. 트랜스포머. 따뜻하지 않은 것. 팔딱대며 뛰는 심장은 없는 것.
내가 길러보았던 돌 중에도 석영. 항아리에 넣어두고 조금씩 물 주며 돌본다. 돌은 자란다. 조금씩. 그런데 돌도 어느날 병이 들기도 한다. 돌의 마음도 갈라지고 해진다. 돌이 위로가 된다구요. 석영의 위안A quartz contentment. 아닙니다. 제 경험은 달라요. 어떤 ‘쉬운 위안’은 위해해요. 더 위험하고 해롭지요.
수천 수만 송이 장미에 일단 황홀해지는 사람들. 그러나 그 독한 향에 질식할 수도 있지요. 망자의 꽃 황국에 도취하는 벌레들. 그 작은 심장을 폐색시킬 수도 있지요. 무대 위에 수천 송이 카네이션 그 위를 유희하는 무용수들. 카네이션이 그들의 발가락을 염색할 수도 있어요. 시작과 끝이 다른 저 움직임. 저 비명.
엄마 저 조각상 제목이 뭐야. ‘사랑의 밀어’. 밀어가 뭐야. 비밀스런 말. 속삭임. 아, 사랑의 속삭임.
근데 남자는 위에서 딴데 쳐다보고. 여자는 아래에서 어디 보는지 알 수 없고. 여자애는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내참, 왜 남자는 위에 있고 여자는 아래에 있어야. 저게 왜 사랑의 밀어야. 이해가 안 가네. 흥, 다 각자 눈도 안 맞추고 놀고 있네.
그러고보니 그렇다. 제작년도 1997년. 그때는 저게 이상적인 가족상이었을까. 저 속내 감춘 무뚝뚝함. 도리어 사랑이었을까. 돌로 얼굴을 표현하자니 어렵고 그냥 면으로 분할해 입체화한 것. 저런 무표정을 만들었겠지.
근데 저 줄은 뭐야. 오랏줄이야 뭐야. 세 사람을 꽁꽁 묶어놨네. 참, 사실적이네. 가족이 서로 구속하고 단속하는 모습을 잘 묘사했네.
세 사람을 오색 리본 같은 거로 감아놓은 건 가족끼리 늘 같이 화합하라는 귀한 연대감을 나타낸 것 같은데. 저렇게도 보이겠구나.
사랑의 밀어가 아니고 사랑의 지옥이네. 지옥. 조각가 참 미래를 잘 꿰뚫어 봤네. 가부장제가 저기 그대로 재현되었네. 엄마, 나 어때. 호호. 나 참 예리하지.
그 아래에서 가족들이 베드민턴을 친다. 그 아래에서 처음 아이가 자전거를 배운다. 아이가 처음으로 바느질을 배운다. 주사 바늘은 무서운데 퀼트 바늘은 마술적이라는 아이.
이제 고작 1학년이다. 엄마가 직장 다니니 오후를 혼자 보내야 한다. 단지 내 빨간펜 아니고 빨간셈 주판 학원에 다닌다. 엄마 주산 달그락대는 거 너무 좋아. 손가락으로 알 올리고 내리고. 꿈속에서도 주판이 움직여.
그러다가 그때는 흔하지 않는 퀼트 샵 앤하우스를 발견한다. 엄마, 우리 동화책 퀼트 할머니의 선물 읽었잖아. 새에게도 곰에게도 해준 퀼트. 왕에겐 절대 안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만 선물한. 피터에게 훔쳐 폴에게 갚기robbing Peter to pay Paul. 이런 재밌는 패턴도 있었잖아. 그 퀼트가 거기 걸려 있어. 나 저거 배울래.
딸과 앤하우스에 간다. 재료를 준비한다. 헝겊과 천과 바늘 실. 그리구 심장 모양 바늘 꽂이. 빨간 비단 심장 모양 쿠션.
1학년 여자애가 바느질 한다. 가끔 바늘에 찔려 손가락에 빨간 핏방울 맺힌다. 바늘은 늘 작은 쿠션 거기 꽂아둔다. 시침 핀도 마음도 엄마가 늦게 데리러 오는 정말 안 가는 오후도.
바늘은 위로가 되지. 쉬운 위로가 아니라 깊은 위로다. 따끔한 위로다. 땀땀이 찔러 무언가 만들어가는 시간의 일출과 일몰이 필요한 위로다. 덧이 아니고 땀땀이. 어슥버슥한 땀이 뒤집어보면 천 뒤에 남아 있다.
내게 결핍이라는 말 올 때마다, 바로 그런 때, 덧이라는 게 올 때. 그때 그 어린 딸애가 만든 가방을 들고 나간다. 가늘가늘 그 손으로 땀땀 기워 만든 동화 속 생쥐 프레데릭. 잠잠이를 가방에 매달고. 이 오래된 헝겊의 물성이 좋다. 빈둥지 지키고 있는 울새인 요즘 나. 거기 부리를 다듬는다. 외로운 심장을 넣어 들고 다닌다.
주판도 좋아. 그러나 바늘에 실 꿰고 퀼트 하면 시간 너무 잘가 더 좋아. 난 낮에 엄마가 없으니. 다른애들 엄마 손 잡구 어디 가면, 난 저 조각상. 그 ‘사랑의 밀어’ 올려다보며 조금 슬펐어. 여자애는 엄마 올려다 보는데, 엄마는 딴데만 쳐다보잖아. 내 곁엔 엄마가 없잖아.
다 커서 보니, 저 조각상은 사랑 같은 거 속삭이지 않아. 결핍 그 자체야. 그냥 돌이야. 돌. 난 엄마 직장 가면 어린 마음에도 시간 잘 보내야지 생각했어.
바늘이 좋았어. 바늘이 나를 위로했어. 바늘의 땀이. 땀땀이 바늘이 지나가면 그 건물 앞 벚나무. 아니, 살구나무.
호르르 폈다 지고 살구 열리고.
엄마, 나 이제는 벚나무와 살구나무 구분해. 둥치에 가로줄은 벚이지. 세로줄은 살구지. 노란 살구가 좋아. 살구 속에 그렇게 단단하고 큰 씨앗이 세들어 사는 게 신기해. 나 그러고 보니 청년 세입자네. 쫌 슬프네. 이 지구에 깃든 영원한 임차인. 맞지, 좀 맘 아프다.
난 그때 그 반짇고리를 연다. 그때 그 바늘꽂이 붉은 쿠션을 꺼내 꼬옥 끌어안아본다. 심장이 콩닥한다.
내겐 심장이 바로 그게 결핍된 부분
난 갖고 싶었지.
핀을 찔러두기에 딱인,
혈액의 끈에 달린 앙증맞은 붉은 실크쿠션을
하지만 이제 마음을 바꿨어.
심장은 아프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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